【시식의 달인 2기 5차】 콩고기 대중화 아직 멀었나
밥상머리뉴스 [시식의 달인] 시식평가에서 맛 개선 요구 많아

아무리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다는 것이 입증됐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함께 챙기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콩으로 만든 고기를 불고기 형태로 제조해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비건팜의 ‘비밀콩불구이’가 출시됐다. 이에 밥상머리뉴스는 자체 시식 평가단 <시식의 달인> 100명을 통해 ‘비밀콩불구이’를 시식평가 한 결과, 콩고기가 몸에는 좋을 것이라고 인식하지만 맛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시중에 소비되고 있는 흔한 단백질인 육류는 포화지방산이 많아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기에 다이어터나 성인병을 걱정하는 소비자의 경우 육류보단 채식을 주로 섭취한다. 이러한 육류를 대처할 단백질 식품으로 꼽히는 콩고기는 콩으로 고기의 식감을 재현한 식품이다. 그러나 이번 평가를 통해 콩고기가 몸에는 좋을 것으로 인식되지만 맛에 대해서는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 콩고기가 대중화되기 위해선 맛이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될 것으로 보인다. ‘비밀콩불구이’ 평가를 하기에 앞서 평가단들은 고기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고려해서 구입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밥상머리뉴스 시식평가단은 그동안 육류 제품을 시식해왔으며 콩고기 제품 시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 밥상머리뉴스 평가단들이 고기 구입 시 가장 고려하는 점은 고기의 종류(53%), 고기의 부위(18%)로 총 71%의 평가자들이 고기를 구입할 때 맛과 식감을 가장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밥상머리뉴스 콩고기를 평가하기 전 육류가 아닌 콩으로 만든 고기에 대해 알고 있냐는 물음에, 알고 있었던 평가자는 81%, 콩고기에 대해 들어봤던 평가자는 15%로 96%의 평가자들이 콩고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 ⓒ 밥상머리뉴스 대부분의 평가자들이 콩고기를 알고 있었지만, 평소 콩고기를 즐겨 먹느냐는 물음에는 72%가 ‘먹어는 봤지만 자주 먹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그 중 29%는 ‘맛이 없어서 콩고기를 먹지 않는다’, 또 다른 29%는 ‘관심이 없어서 먹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 밥상머리뉴스 이에 콩으로 만든 고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몸에 좋을 것 같다’는 답변이 72%, ‘맛이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이 20%로 평가자들 대부분 콩고기가 몸에 좋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맛이 없어서 섭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밥상머리뉴스 이번 시식 제품 ‘비밀콩불구이’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만족한 61%의 평가자들 역시 만족한 이유에 대해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가 54.8%, ‘맛있어서’는 11.3%로 건강에는 좋을 것이라 생각은 하나, 제품의 맛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 밥상머리뉴스 또한 이번 시식 제품에 대해 불만족하는 13%의 응답자들 가운데 56.7%가 ‘맛이 없어서’를 불만족하는 1순위 이유로 꼽았다. ⓒ 밥상머리뉴스 제품 재구매 의사에 대한 부분에선 43%의 평가자들이 재구매 의사를 보였지만, 29%의 평가자들은 ‘잘 모르겠다’, 27%의 평가자들은 ‘재구매 의사가 없다’고 답변했다. 재구매 의사 43%는 지금까지 11번의 시식평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재구매 의사가 없다고 답변한 평가자들의 이유는 ‘실제고기가 더 맛있어서’(34.3%)를 1순위 이유로 꼽았고, ‘맛이 없어서’(28.6%), ‘콩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서’(25.7%) 순으로 나타났다. ⓒ 밥상머리뉴스 콩고기를 고기 대용으로 먹는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53%가 고기 대용으로 적절하다고 답했는데 적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가 70.9%로 10명 중 7명이 맛 보다는 건강을 생각해서 콩고기를 섭취할 것으로 답했다. 이 외에 21.8%의 응답자가 고기만큼 맛있어서 콩고기를 선택한다고 답했다. ⓒ 밥상머리뉴스 또한 콩고기가 고기 대용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28%의 평가자들 중 61.1%는 ‘맛이 없어서’를 1순위로 꼽았다. 해당 제품의 총점은 5점 만점에 평균 3.55점으로 보통 이상의 점수를 받았지만, 제품에 대한 개선점으로 ‘건강에는 좋을 것으로 생각되나 맛에 대해 좀 더 개발되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몸에는 좋은 육류 대체품이지만 육류에 비해 맛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채식주의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맛에 대한 개선이 보완된다면 기존의 육류를 대체할 단백질 식품으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식의 달인>이란? 밥상머리뉴스는 국민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2016년부터 시식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밥상머리뉴스의 자체 시식평가단 <시식의 달인>은 모두 10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가자를 성별로 구분하면 여성이 80%, 남성이 20%이며, 연령대별로는 20대 23%, 30대 38%, 40대 23%, 50대 이상이 16%로 구성돼 있다. 이번 평가는 열 한 번째 평가이며, 제2기 <시식의 달인>에게는 다섯 번째 평가다. 시식의 달인 리뷰 보러가기 ↓ ↓ ↓ ↓ [시식의 달인] 글루텐 프리♡ 비건팜 비밀 콩 불고기 좋아요~~ 밥상머리뉴스 시식의달인 2기_다섯번째-고기대신 콩으로.. 세상의 비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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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먹자】 냉면에 대한 오해와 진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냉면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만찬에서 평양 <옥류관> 냉면을 메뉴로 내놓으면서 ‘북한=평양=냉면’이라는 공식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냉면에 대해 제대로 알고 먹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밥상머리뉴스>가 냉면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소개한다. ▲냉면이란? 냉면(冷麪)은 말 그대로 찬국수다. 차게 해서 먹는 국수다. 삶은 국수를 찬 육수에 말아먹거나 고추장 양념 등에 비벼서 먹는 음식을 말한다. ▲냉면의 유래는? 냉면의 기원은 고려시대 중기의 평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3년 북한에서 간행된 요리 서적에 의하면, 평양냉면은 현재 평양의 대동강구역 의암동 지역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며, 메밀 수제비 반죽을 국수로 뽑은 것이 시초라 한다. 고려 중기의 냉면을 기록한 고문헌에는 '찬 곡수(穀水)에 면을 말아 먹는다'는 취지의 기술이 있다. ▲왜 북한에서 냉면이 유명한가? 평양을 비롯한 북한지역은 밀농사가 잘 되지 않아서 밀이 귀했다. 밀은 따뜻한 지방에서 잘 자라는 곡식인데 북한은 추운 지방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산악지역이 많아서 메밀농사나 감자농사가 잘 되는 편이었다. 국수는 원래 밀가루로 반죽을 하는 편이지만 북한에서는 귀한 밀가루 대신 메밀이나 감자, 고구마 등을 이용했다. 메밀이나 감자 등으로 만든 냉면이 북한에서 발달한 이유다. 여기에다가 북한지방은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운 지방이다. 냉면은 겨울 건강을 다스리는 대표적인 음식이어서 남한보다 북한에서 더 발달하게 됐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는? 흔히 평양냉면은 물냉면,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 모두 물냉면과 비빔냉면 둘 다 있다. 두 지역 냉면의 가장 큰 차이는 원료의 차이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를 원료로 사용하고,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원료로 사용한다. 그런데 메밀가루로 만든 면은 잘 끊어져서 비빔냉면으로 만들기에는 부적합해서 주로 물냉면으로 만들다 보니 평양냉면은 물냉면이 비빔냉면보다 더 유명해진 것이다. ▲냉면은 여름음식인가 겨울음식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운 여름에 냉면을 많이 먹는다. 그러나 본래는 겨울음식이다. 그러면 왜 추운 겨울에 차가운 동치미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을까? 여기에는 의학적 원리가 있다. 추운 겨울에 사람들은 옷을 많이 입게 되고, 춥다고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다. 더불어 야외 활동도 많지 않아 운동량도 적다. 이렇게 되면 인체의 호흡기관인 폐(肺)는 발산하는 기운이 적어지고 간(肝)의 모아들이는 기운이 많아지기 때문에 혈액은 탁해지고 소화기관인 비장(脾臟)과 위(胃)에 열이 쉽게 쌓인다. 인체에 화기가 쌓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며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쉽게 걸리게 된다. 메밀국수와 시원한 동치미는 이렇게 발생하는 화기를 식혀 소화기관의 열을 내리고, 혈액을 정화해 각종 질병을 방어할 수 있는 면역력을 키워주는 음식이었다. 메밀은 성질 적으로 찬 음식이고, 동치미는 온도 적으로 찬 음식이어서 몸속의 화기(火氣)를 내리는 데는 제격인 셈이다. 게다가 동치미 국물은 메밀의 독성을 내려주기까지 하니 최고의 궁합이다. 냉면에 고명으로 올리는 돼지고기 편육과 오이도 찬 성질이어서 찬 음식의 시너지를 더하는 셈이다. 이는 여름에 땀을 많이 흘려 냉기(冷氣)로 가득한 속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여름철에 뜨거운 성질의 식재료인 닭고기와 인삼으로 삼계탕을 만들어 보양식으로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여름에 냉면을 먹는 것은, 특히 차가운 성질의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을 먹는 것은 먹는 순간에는 시원해서 좋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건강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육수를 따뜻한 성질의 소고기나 닭고기로 만든 것이라면 찬 기운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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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한참 뒤처진 한식뷔페의 추락
1인 외식, 메뉴 차별화, 소비자 니즈 파악 전부 어긋나…변화 모색 필요

한식뷔페의 대중화를 주도했던 이랜드파크의 자연별곡 1호점 미금점이 지난 10일 문을 닫았다. 자연별곡은 2016년 2월 이후 신규매장을 출점하지 않고 있다. 다른 한식뷔페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신세계푸드의 올반 또한 전성기인 2015년에는 신규 매장을 11개까지 늘렸으나, 2016년에 1개 매장만 오픈했다. CJ푸드빌의 계절밥상은 2015년에만 26개의 신규매장을 출점했으나 2016년에는 12개로 신규 출점 매장 수가 줄었으며, 올해에는 신규매장 오픈 계획이 없다. 풀잎채(주)의 풀잎채 또한 올해는 신규 매장을 늘리지 않을 계획이다. 한식뷔페는 2013년 중소기업인 풀잎채를 시작으로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계절밥상, 자연별곡, 올반 등을 통해 대중화됐다. 하지만 한식뷔페는 2015년 전성기를 누린 뒤 최근 2년 전부터 폐점 및 영업 부진 등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전성기 때는 트렌디한 외식 아이템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한 때의 유행 아이템이 되고 말았다. 이유는 먼저 한식뷔페의 정체가 뷔페라는 외식업 형태에서 기인한다.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1인 외식은 이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혼자 외식하는 빈도는 2016년 대비 10.8% 증가한 4.1회/월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혼자 외식하기 가장 불편한 곳인 뷔페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한 최신 트렌드가 ‘나홀로 열풍’, ‘반외식의 다양화’, ‘한식의 재조명’으로 꼽히면서 1인 외식, 셀프외식, 모던한식이 지속 가능한 트렌드로 제시됐다. 이는 무한리필 형식의 뷔페가 한물간 트렌드라는 것을 확연히 반증해준다. 아울러 한식뷔페는 한식의 재조명에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부터 한식단품이 인기를 끌면서 가정간편식 형태의 ‘단순화’와 모던한식과 같은 ‘고급화․전문화’ 된 한식이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한식뷔페가 다루는 음식 메뉴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이 조리를 해 비전문적이다. 계절밥상과 풀잎채는 한식 가정간편식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의 다양한 유통채널에서 외식 전문점 못지않은 한식 가정간편식이 판매되고 있어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식뷔페는 급변하는 외식 트렌드에서도 뒤처진다. 최근 외식업을 이끄는 트렌드는 ‘인스타그래머블’, ‘매력슈머’, ‘소확행’이다. 인스타그래머블은 사진 전문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을 정도로 보기 좋고 예쁜 음식으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한식 파인다이닝 ‘비스트로 서울 한상’은 사진이 찍고 싶어지는 화려한 플레이팅이 특징인 한상 메뉴를 3월 21일 선보였다. 또한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모디슈머 덕분에 음식 메뉴도 차별화되고 있다. 이에 외식업계는 세계 각국의 요리와 같은 새로운 미식 경험이나 창고형 카페와 같은 독특한 인테리어 등의 차별성과 개성을 지닌 상품 개발하고 있다. 아울러 소비자들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 트렌드에 따라 소박한 멋이 살아 있는 골목상권에서 외식을 즐기고, 저렴하면서도 고품질의 커피와 디저트 등을 편의점에서 즐기는 추세다. 그러나 한식뷔페의 메뉴는 자율 배식․플레이팅 시스템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음식도 아닐뿐더러 표준화된 메뉴는 개성이나 차별성을 드러낼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한식뷔페의 가격은 1만 3,900(점심)부터 2만 3,900(저녁)으로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이에 따라 한식뷔페는 1인 외식 트렌드에 걸맞지 않은 외식업 형태와 한식 재조명과 메뉴 차별화 실패, 소비자 니즈 불충족으로 인해 하락세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식뷔페가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품으로 즐기기에도 손색없는 대표메뉴를 앞세우고, 사이드 메뉴를 다양하게 선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혼자 방문한 손님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좌석이나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도 지적된다. 앞으로 한식뷔페는 시시각각 변하는 외식업 트렌드를 파악하고, 소비자 니즈를 분석해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하락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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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아버지를 배신한 아들과 며느리
김병조(본지 발행인)

국내 최초로 라면을 만들어낸 삼양식품의 창업정신은 ‘정직’과 ‘신용’이다. “정직과 신용은 창업자인 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삼양식품을 통해 영원히 이루고자 했던 경영의 가치”라고 삼양식품은 공개적으로 자랑해왔다. 삼양식품은 “더욱이 불특정 소비자를 상대로 하여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서는 정직으로 임해야 하며, 생산 제품 하나가 정직한 마음씨의 결정이 되어야 하고, 거래관계에 있어서도 정직이 기초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그 가치를 현재의 경영진인 아들과 며느리가 헌신짝 버리듯이 내팽개쳐버렸다. 15일 검찰에 따르면 창업자의 아들인 전인장 회장과 며느리인 김정수 사장 부부는 2008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삼양식품이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포장 박스와 식품재료 중 일부를 자신들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로부터 납품받은 것처럼 꾸며서 총 50억 원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전인장 회장 등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는 삼양식품에 납품하지 않고도 대금을 받았고, 이같은 수법으로 페이퍼 컴퍼니에 지급된 돈은 고스란히 전인장 회장과 부인 김정수 사장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심지어 며느리 김 사장은 페이퍼 컴퍼니 직원으로 근무한 것처럼 꾸며서 매달 4천만 원의 월급을 챙겨 갔으며, 이 회사의 돈을 자택 수리비로 쓰거나 남편 전인장 회장의 자동차 리스 비용으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정직과 신용을 창업정신으로 내세웠던 고인이 된 창업자 전종윤 명예회장이 하늘에서 땅을 칠 일이다. 故 전종윤 명예회장이 어떤 사람이었던가? 한국전쟁 이후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꿀꿀이죽’을 먹는 사람들을 보고 식량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961년 회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1963년 ‘삼양라면’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우리나라 라면의 시초다. 정직과 신용을 기업경영의 핵심가치로 여긴 전종윤 창업자의 정신은 신화처럼 업계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삼양라면이 첫 출시되었을 때 라면 한 봉지 가격은 10원이었다. 직원들이 라면 가격을 올리자고 건의를 하면 “어려운 서민들이 먹는 음식인데 가격을 올리면 서민경제에 부담이 돼서 안 된다,”며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훗날 농심라면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신(辛)라면도 원래는 삼양라면 직원들이 먼저 매운 라면을 개발하자고 건의를 했었다. 그때 전종윤 명예회장은 “매운 라면을 먹고 국민들이 위장병에 걸리면 누가 책임지나?”라면서 매운 라면 개발에 반대했다고 한다. 정직과 신용 때문에 농심라면 인수를 없던 일로 한 일화도 있다. 라면시장 초기 국내 라면시장은 삼양라면의 시장점유율이 70%나 될 정도로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었고, 후발 농심(당시 롯데공업) 등은 지지부진했었다. 이에 농심이 라면사업을 포기하려고 삼양식품에 회사를 인수해줄 것을 부탁했고 그렇게 하기로 MOU까지 맺었었다. 그런데 본 계약을 앞둔 시점에 롯데공업이 라면공장에서 라면 제품을 몰래 빼돌리다가 적발돼 인수계약이 무산된 일이 있었다. 훗날 농심이 삼양라면을 앞지르고 시장에서 1위로 역전되는 일이 벌어져 지금 생각하면 삼양라면으로서는 땅을 칠 일이 되어 버렸지만 정직과 신용을 생명처럼 중히 여긴 전종윤 명예회장에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조치였다. 그런 아버지 창업자의 창업정신을 손자도 아닌 아들과 며느리가 배신을 했다. 이는 아버지가 만든 ‘착하게 살자’라는 가훈을 집안에 걸어놓고 아들과 며느리는 남을 속이며 나쁘게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에 대한 불효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까지 기만한 행위다. 해방 이후 탄생한 국내 1세대 식품기업들은 대부분 창업자가 고인이 되거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2~3세가 경영을 승계 받았다. 그리고 현존하는 1세대 식품기업들은 적어도 50~60년의 역사를 가진 그야말로 산전수전 모두 겪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그런 회사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남달랐던 창업자의 창업정신과 기업경영 가치도 포함될 것이다. 이제 2~3세 경영인들이 창업자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유지·발전시키는지 여부가 개별 기업의 수명은 물론 한국 식품산업의 미래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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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먹자】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

술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 할 만큼 술은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 한 인류의 오랜 벗이다. 술의 기원은 원숭이가 과일로 만들어진 ‘천연주’를 우연히 발견했고, 이를 인간이 마시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과일과 벌꿀의 당분이 공기 중의 효소와 만나 발효되어 천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천연주 이후, 처녀들이 입으로 곡물을 씹어 만들었다는 ‘미인주’와 말 젖으로 만든 ‘유주(乳酒)’ 등 술의 제조가 시작되었다. 중국 은(殷) 나라의 유적에서 술을 빚는 항아리가 발견되었고, 이집트 신화에는 보리로 맥주를 제조하고, 그리스 신화에는 디오니소스가 술을 발견했으며, 성경에는 노아가 신에게 포도주 양조법을 배웠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술은 인간이 개발한 가장 오래된 먹거리이다. 그럼 우리의 전통주는 어떤 역사를 갖고 있고, 우리의 전통 음주문화는 어떤지 살펴보자. ‘해모수’로부터 시작된 우리 술의 역사 우리 술의 명확한 기원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자연적으로 발생해 농경시대에 본격화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중국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부여, 고구려 등에 관한 기록)에 영고(부여), 동맹(고구려), 무천(동예)의 제천의식에서 술 마시고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문헌으로는 고려시대 이승휴가 지은 역사서 ‘제왕운기’에 동명성왕의 탄생에 얽힌 술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제왕운기에는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화백의 세 딸이 청하(지금의 압록강)의 응심연에서 더위를 피하는 것을 보고 반해 새 궁전을 짓고 세 처녀를 초대해 술을 대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중 ‘유화’와 정이 들어 후에 ‘주몽(朱蒙)’을 낳았고, 이 사람이 훗날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술의 우리말 어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술의 발효 과정을 표현한 수불·수불이 술로 변화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곡식과 누룩을 넣어두면 열을 가하지 않아도 발효 과정에서 부글부글 끓어 난데없이 ‘물에 불이 붙는다’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원래는 ‘물불’인데 한자로 물이 水이므로 수불>수울>수을>술로 변했을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한자 酒(주)는 술을 담는 뾰족한 항아리 모양에서 유래했다. 우리 술의 시대별 화려한 역사 삼국시대는 우리 술의 태동기로 곡물을 사용해 술을 빚는 방법이 고구려에서 완성되어 주변국으로 전파됐다. 고구려에서는 곡식을 발효시켜 만드는 양조방법이 완성되어 곡아주(穀芽酒)라는 명주가 탄생했다. 백제는 일본에 술을 전파하고, 신라에서는 고구려에서 들어온 낙랑주법으로 다양한 양조곡주가 개발되어 청주로 음용했다. 고려시대는 우리 술의 발전기로, 우리 술의 3대 분류인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형태가 완성되어 다양한 술이 개발됐다. 양조기술의 발달로 녹파주, 황금주 등 다양한 명주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우리 고유의 고급 막걸리인 이화주도 탄생했다. 활발한 대외교역의 증가로 다양한 외래주 도입이 본격화되어 증류식 소주가 아라비아에서 원나라를 거쳐 전래되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우리 술의 최고 전성기로, 뱁쌀 위주에서 찹쌀로 원료가 고급화되고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가문의 술과 지방주가 성행했다. 가문마다 집에서 빚은 가양주(家釀酒)가 발달하고, 지역의 맞는 다양한 원료와 양조법을 활용한 지역별 명주가 등장했다. 탁주, 약주, 소주 외에 발효주와 증류주를 혼합한 혼양주가 등장해 문헌에 기록된 술이 340여 가지나 된다. 일제강점으로 시작된 우리 술의 쇠퇴와 정체기 조선시대 화려했던 우리 술의 전성기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쇠퇴기로 전환했다. 1961년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가정에서 제조되던 가양주 등의 우리 술이 불법으로 간두되어 단속 대상으로 전락했다. 세수 확보를 위해 우리 술을 탁주, 약주, 소주, 일본청주로 단순화하고 주막문화를 폐지했다. 양조장 통폐합을 통한 대형화로 안정적인 주세 징수체계의 구축과 술의 자가 제조를 금지했다. 1916년에 37만 명이나 되었던 자가 제조 면허자는 10년 후인 1926년 13만 명으로 줄고, 1929년에는 265명에 불과했으며 1934년에는 한 명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전쟁 이후, 식량과 원료 농산물의 부족으로 주류 생산이 제한되고, 세수 확보에 유리한 일제의 주세행정을 답습했다.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술 제조에 쌀 사용을 금지하고 안동소주 등 증류식 소주의 제조를 금지했다. 막걸리 제조 원료로 밀가루 등 수입원료가 사용되었으며, 희석식 소주가 증류식 소주를 대체해 우리 술의 품질이 저하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대기업을 중심으로 맥주와 희석식 소주의 생산량이 급증했다. 1987년 맥주의 소비량이 사상 최초로 막걸리 소비량을 넘어서고,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양주 소비가 급증했다. 부담 없이 어디서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맥주가 대중화되고, 경제호황으로 양주 소비가 늘면서 폭탄주 등 왜곡된 형태의 술 문화가 확산됐다. 우리의 음주문화는 수작(酬酌)과 군음(群飮)의 문화 결혼, 장례, 제사, 성묘 등 우리 민족 삶의 희로애락에 술은 항상 빠지지 않는 요소로 등장하며, 술은 우리 민족에게 삶의 일부로 간주되어 왔다. 우리 민족의 음주문화는 스스로 술을 따르는 서양의 자작(自酌) 문화와 달리 서로 술을 따라주는 수작(酬酌)의 문화다. 수작문화와 함께 혼자 술을 마시기보다는 함께 어울려 마시는 군음문화로서 강한 집단문화를 형성해왔다. 술을 함께 마신다는 것은 곧 그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므로 술을 마시는 방법에 엄격한 법도와 예절이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우리의 술 문화에는 향음주례(鄕飮酒禮)라는 주도가 있었으며, 향음주례의 기본정신은 지금의 술 예절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향음주례는 조선시대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주연을 즐기는 의례로, 예절바른 주연을 통해 예법 등의 풍속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단정한 의복으로 끝까지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술을 흘리지 않으며, 언행이 일치해야 하며, 술자리에서 일어날 때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 향음주례의 정신이다. 또 건배는 술잔을 부딪치지 않고 가슴 부분에 살짝 올리며, 술은 3잔 정도가 좋고, 어른과 함께 할 때는 고개를 45도 옆으로 돌리고 술을 마셔야 한다. 정감어린 주막문화와 다양한 술병·잔 최초의 술집은 고려 성종 2년(983년) 송도(개성)에서 시작되었고, 고려 숙종 때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고을마다 주점 개설을 허용했다. 엄격한 신분사회인 조선시대에는 모주집, 주막, 선술집 등 다양한 형태가 계층별로 존재했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주막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소재 ‘삼강주막’이다. 1900년경 문을 연 주막으로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삼강주막’이라 불렸다. 나들이객에겐 식당으로, 보부상에게는 여관으로, 시인묵객에는 모임장소로서의 기능을 했다. 2007년에 복원됐다. 우리의 술 문화는 시대별로 유행하던 도자기 제작기술과 어울려 다양한 술병과 술잔을 탄생시키며 발전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청자를,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사용했고, 용기류 술병은 시대를 이어 계속 사용됐다. 술 도수를 기준으로 막걸리는 사발과 막사기를, 약주는 지금 4~5cm의 술잔, 소주는 지름 3cm의 술잔을 이용했다. 취하는 술이 아닌 즐기는 술의 문화는 술잔에서도 드러나는데, 과학적 원리를 지닌 ‘계영배’가 좋은 예이다. 계영배(戒盈杯)는 술이 일정 높이 이상 차면 새어 나가도록 해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을 주는 잔이다. ‘상도(商道)’의 임상옥은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과욕을 다스리며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자료협조: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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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70부터, 도전은 계속된다”
【외길인생】 한국 피자업계 대부 성신제

국내 외식업계에는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도 많고 실패자도 많다. 그런데 성공스토리는 많은데 자신의 실패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기 여러 차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온 원로 외식사업자가 가슴으로 말하는 성공한 이유와 실패한 이유,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후진들에게 귀감이 될 듯하다. 밥상머리뉴스가 국내 피자업계의 대부(代父)인 성신제 前 성신제피자 대표를 만나 봤다. <대담: 김병조 발행인> 1985년에 피자헛 1호점을 오픈한 국내 피자1세대 ▲학벌 좋은 사람이 어떻게 해서 피자업계에 입문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성신제 대표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무역회사에서 주방용품을 취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출장을 다니면서 피자헛을 알게 되었고, 피자헛을 상대로 거래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회사에 밴더(상품공급자)로 들어가게 되면 항상 손해를 보는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맹점을 운영하게 되면 ‘갑’이 된다. 주방용품 수출을 더 화끈하게 하려면 가맹점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피자헛 본사를 상대로 가맹점 운영 상담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피자헛 본사를 상대로 뭘 어떻게 했기에 무역회사 직원이 피자전문가가 되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한국에서 피자헛 매장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 뉴저지에 있는 본사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국내 유명 대기업들이 지원을 한 상태에서 면접을 하게 되었는데, ‘직원이 몇 명이냐, 사업 이력은 어느 정도냐 등의 질문을 듣다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떨어지겠다 싶어서 어깨를 뒤로 빼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오히려 내가 질문을 했다. 레스토랑의 타깃이 무엇이냐부터 시작해서 경쟁사 맥도날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도발적인 질문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서비스산업의 사회적 인지가 낮아서 고객 클레임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며 고학력을 가진 내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고객들과 직접 마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의 명문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출신인데, 그런 내가 직접 피자를 만들고, 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말했더니 면접관이 다른 대기업들과의 면접약속을 취소하고 나와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1985년 국내에 처음으로 피자헛 매장을 오픈한 장본인이 된 것이다. ▲서초구 양재동 공방에서 인터뷰 하고 있는 성신제 대표 Ⓒ밥상머리뉴스 ▲매장을 처음 낼 때 나름대로의 초심이 있었을 텐데 그 초심이 뭐였나. 사실 레스토랑에 대해 전혀 몰랐다. 미국에 출장가면 주방에서 내가 수출한 기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정도만 보고 했던 사람인데 막상 레스토랑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외식업계에 발을 들여놓으니 국내의 상황이 너무 비관적이었다. 86년에 아시안게임, 88년에는 올림픽이 열리는데도 서울에 외국인들이 갈만한 곳이 없었다. 외국인들이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이 이태원 일대 뿐이었다. 이태원의 맥도날드, KFC, 버거킹 등이 전부였다. 당시 한식당은 창피한 곳이었다. 특히 위생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피자헛이 가지고 있던 인테리어 데코 매뉴얼을 활용해 작품 하나 만들고 싶었다. ‘가족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 ‘대신 호텔보다 엄청 저렴한 가격’,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깜작 놀랄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초심이었다. ▲그때 그 초심을 사업하는 내내 지켜냈는가?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인력문제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 당시에 피자헛 미국 본사 교육담당 트레이너를 불러서 직원들 교육을 시켰는데, 트레이너는 한국말을 못하다보니 영어 동시 통역사를 썼지만 통역사가 레스토랑 전문용어를 전혀 몰라서 문제가 발생했다. 85년에 시작해서 93년에 매장을 52개까지 오픈했는데 직원들이 늘어나는 스피드에 교육을 맞춰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교육을 했던 직원들과 나중에 커지면서 배출되는 직원들과 차이가 있었다. 왜 초기처럼 교육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있다. ▲그렇게 키운 피자헛이 지금은 형편없다. 안타까운 생각도 들 텐데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피자헛의 문제를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여자의 화장과 같다. 93년도에 피자헛을 그만둘 때까지 본사와 매일 싸웠던 부분이 기름의 사용량이었다. 내가 보기엔 피자를 구울 때 쓰는 오일과 토핑이 너무 많다. 기름이 많을수록 고소해지고, 소비자들은 중독이 되기 때문에 본사에서는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나오고 난 후에 전문경영인을 데려왔는데, 전문경영인들은 고객의 건강보다는 자기 임기 중에 매출을 많이 올리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또 기름을 많이 쓴다. 그리고는 화장하듯이 또 토핑을 요란스럽게 올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내서 가격은 할인을 하고, 그렇게 하면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일시적으로 매출은 오르겠지만 화장을 지우고 민낯으로 나왔을 때, 그것이 더 좋은 것인데도 그것에 관심이 없게 된다. 그러면 또 화장을 진하게 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매니저먼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성신제 대표 Ⓒ밥상머리뉴스 “외식업을 기업적으로 성공하려면 매니지먼트가 중요” ▲그동안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과거를 되짚어보기도 했을 텐데,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의 키포인트를 꼽는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점에 대해 아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들은 “아빠는 피자 만드는 장인이지 사업가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나는 피자나 케이크를 만들 때 항상 현장에서 직원들과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다시 말하면 나는 늘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될 때와 안 될 때를 비교해보니까 잘 될 때는 내 뒤를 뒷받침해주는 스텝들이 있었는데, 안 될 때는 그런 스텝들이 없었더라. 나는 똑같았는데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혼자서는 가게 하나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크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많은 부분을 희생해서라도 스텝들을 잘 갖춰야 한다고 본다. ▲지금 만약에 창업자금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난 다시 피자 사업을 할 것이다. 지금도 피자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면 새로 하고 싶은 피자는 어떤 컨셉의 피자인가? 기본에 충실한 피자다. 지금 국내에서는 해괴한 피자들이 돌아다니는데 원산지인 이탈리아에서는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다. 이탈리아에서의 피자는 아직도 화장을 하지 않는다. 담백한 도우에 토마토 페이스트와 자연치즈, 심한 경우엔 이 상태에서 아무것도 뿌리지 않고 이것만 넣어도 엄청나게 맛있다. 우리는 지금 기초에서 너무 많이 벗어났다. 이렇게 하다 보면 개인이 하는 동네 피자가 점점 사양길에 들어갈 것이다. 피자 시장 자체는 무너져가고 있는데 이걸 회복하려면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방식대로 기초에 충실한 컨셉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좋지만 이에 문제되는 것은 서빙 속도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시킨 것이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탈리아 전통 화덕을 사용해 기초에 충실한 피자를 만들면서도 서빙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켜 만드는 컨셉을 미국에서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을 배워서 이탈리아 스타일과 미국의 빠른 베이킹을 같이 접목시켜 만들어보고 싶다. ▲‘창업자금 7만2천원’이라는 책을 내놓았는데, 이 책에서 예비창업자들에게 던지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 외식업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태도, 제품에 대한 태도, 경영인의 자세 등의 내용을 담았다. 창업에서 중요한 것은 자빠지더라도 자빠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어나느냐, 안 일어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두면 안 된다. 일어날 생각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성신제 대표의 저서 '창업자금 7만 2천 원' Ⓒ밥상머리뉴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 없으면 창업하지 마라” ▲요즘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단기간에 폐업하는 사람도 많다. 예비창업자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을 주문하고 싶은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워라벨, 스라벨, 골라벨 등 삶의 균형을 중요시 여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창업하는 사람들은 워라벨 등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해야지..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창업을 하지 말고 일평생 직장에서 참고 살아야 한다. 내 경우는 피자헛 사장이었음에도 라면 한 그릇을 먹을 때도 직원들을 배려해 통로 계단 구석에서 먹으면서 일했다. 남들이 보기엔 사장이라 하니 굉장해 보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굉장히 치열하게 죽기 살기로 일에 몰두했다. 워라벨 등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창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 ▲HMR시장의 급성장 등으로 외식업이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외식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점점 GDP가 올라가고 있다. 소득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HMR이 잘 나오더라도 한 끼 고급스러운 식사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는 커지기 마련이다. 그 대신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느냐 못하느냐가 관건이다. 고객의 니즈는 분명히 있으니 거기에 맞출 수 있는 질 높은 메뉴나 서비스가 개발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성신제 대표는 피자헛에 이어 자신의 이름을 딴 <성신제피자>로 피자업계에서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조그마한 공방에서 어렵게 재기를 꿈꾸고 있다. 컵케익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칠순의 나이에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워 보였다. 30년 넘게 외길을 걸었으면 징그러울 만도 한데 그를 다시 꿈꾸게 하는 이유는 뭘까? 그가 말한 것처럼 “외식업은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기 때문에 하루 일을 시작할 때마다 흥분되고 설레는 엄청난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리: 백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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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을 구매 또는 섭취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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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심,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 오픈

농심이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Forest Kitchen)’을 오는 27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오픈한다. Forest Kitchen은 숲(Forest)과 주방(Kitchen)을 조합한 단어로 자연의 건강함을 담은 메뉴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휴식(For Rest)의 의미도 전달할 수 있는 만큼, 비건 푸드로 고객의 힐링은 물론 지구 환경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도 함께 담았다. 농심 Forest Kitchen은 비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며, 단일 코스요리로 다양한 비건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저녁 10개, 점심 7개 요리가 제공되며, 이 중 3가지 요리에 대체육을 사용한다. 농심 관계자는 “각 메뉴마다 스토리를 입혀 기존 비건 레스토랑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맛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비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기존 대다수 비건 레스토랑이 햄버거, 파스타 등을 제공하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라는 것과 차별화된다. 비건 푸드에 대한 색다른 경험과 인식개선에 중점을 둔다는 전략이다. 특히, 농심은 그간 대체육을 개발하며 축적한 기술력에 김태형 총괄셰프가 미국 뉴욕의 미슐랭 1, 2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접목해 메뉴를 개발했다. 대표적인 메뉴는 코스의 첫 요리이자 레스토랑의 이름을 담은 ‘작은 숲’이다. 작은 숲은 숲으로 꾸민 트레이에 제철 채소를 이용한 한입거리 음식과 콩 커스터드, 콩꼬치 등을 담았다. 농심 포리스트 키친은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애플리케이션 ‘캐치테이블’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농심은 비건 문화의 확산과 대체육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트렌드에 발맞춰 새로운 비건 식문화를 열어가기 위해 레스토랑 오픈을 추진했다. 농심은 타 비건 레스토랑과 달리 대체육 핵심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향후 이를 활용한 신메뉴 개발에 유리하다는 장점을 살려 다채로운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 배스킨라빈스, 7월 이달의 맛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 출시

배스킨라빈스가 하와이 소재의 마카다미아 전문 브랜드 ‘마우나로아’와 협업해 7월 이달의 맛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을 출시한다.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은 고소한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과 달콤한 카라멜 아이스크림의 두 가지 플레이버에 견과류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토핑을 쏙쏙 넣은 후, 카라멜 리본을 둘러 바삭한 식감과 깊은 풍미를 극대화 한 제품이다. 입 안 가득 부드럽고 진한 달콤함과 특유의 이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어 마치 하와이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달의 음료로는 고소한 마카다미아 맛 블라스트에 부드럽고 풍부한 향의 카라멜 드리즐을 더한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블라스트’를 선보인다. 허니 로스티드 맛 마카다미아 한 봉을 토핑으로 통째로 올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풍미가 특징이다. 이와 함께,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코팅을 입힌 볼 형태의 디저트 ‘아이스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볼’도 7월 중순부터 만나볼 수 있다. 이외에도, 배스킨라빈스는 포켓몬스터를 적용한 제품들의 인기에 힘입어 ‘팽도리’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한다. 시원 상큼한 밀크와 소다 맛 아이스크림에 팝핑 캔디를 올려 톡톡 튀는 식감을 더한 플레이버 ‘도리도리 팽도리’를 비롯해, ‘팽도리와 함께 퍼즐을 케이크’, ‘팽도리 미니 모찌팩’, ‘팽도리 블루레몬 블라스트’ 등 4종이다. 한편, 배스킨라빈스는 무더운 여름을 날려버릴 시원한 혜택을 담은 ‘H-DAY 이벤트’를 진행한다. 7월 2일부터 30일까지 매주 주말마다 파인트(8,900원) 사이즈 이상 구매 후 해피포인트 2천 포인트 사용 시 2,000원의 혜택을 적용해 4,900원에 판매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피앱 및 배스킨라빈스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