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엘리트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이른바 ‘KS’ 출신에 고위 공무원과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치인 정두언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식당 마담이다. 부인과 함께 서울 마포에서 <스시 감>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일터인 음식점에서 그를 만나 요즘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생각들을 끄집어내 봤다. (편집자 주) - 요즘 행복한가? “음식점 사업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걱정했던 것보다 일단 손해는 안보고 남는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매일이 파티 같은 기분이다.” - 어떤 면에서 행복한가? “내손으로 월급을 주는 게 신난다. 사는 것 같다. 흔히 ‘먹물(지식인)’들은 추상적인 삶을 사는데 나는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 외식업이 비즈니스 중에서도 가장 투명하고 정직한 사업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인터뷰 중인 정두언씨 Ⓒ밥상머리뉴스 “내려놓고, 낮은 데로 임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 - 그런데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낮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남편이 답변을 하기 전에 아내 구윤승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려놔야죠” 그 외마디는 남편 정두언씨가 많이 내려놨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리고 정두언씨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배울수록 나이가 들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보통 사람들은 바쁜데, 먹물들은 외롭다. 심지어 노인정에도 가지 못한다. 가게가 자리 잡으면 나비넥타이를 매고 본격적으로 서빙을 할 생각이다.” 두 부부의 입에서 나오는 ‘내려놓는다’, ‘낮은 데로 임한다’는 말 속에 행복해지는 길이 있음을 느꼈다. ▲부인 구윤승씨와 함께 매장 안에서 다정한 모습 Ⓒ밥상머리뉴스 - 음식점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아내가 나를 만나서 일이 없었다. (정두언씨는 현재의 아내를 재혼으로 만났다.) 젊은 사람이 집에만 있으니까 서로 답답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에 친정 부모님 덕분에 음식점 경험이 있으니까 하게 됐다. 일이 생겨서 서로가 좋다.” - 실제 음식점을 경영해보니까 어떤가? “처가집이 전에 복어전문점을 운영한 적이 있어서 아내가 실전 경험이 좀 있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거의 없는 편이다. 보통 처음 장사를 하면 가게가 알려질 때까지 시간이 엄청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나 때문에 저절로 알려져서 그런 고생은 안하는 것 같다.” “정치인이나 음식점 서빙이나 을의 입장은 마찬가지” - 가게에서 하는 역할이 뭔가? “다른 일식집에 가면 여성들이 서빙을 하는데 여기서는 내가 한다. 찾는 사람들이 나를 알고 찾아오니까 마담 노릇하고 있다." - 할 만한가? “정치 하면서 유권자에게 서비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어서 괜찮다. 정치인이나 마담이나 을의 입장인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걱정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잘해요.” - 손님이 꽤 많은데, 이른바 ‘오픈효과’라고 보는가? “두세 달 되었는데 장사가 잘된다. 오픈효과도 있겠지만 계속 잘 될 것 같다. 벌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뭐든지 요즘은 가성비가 중요해요. 처음 오픈할 때 주방장과 메뉴 가격 결정을 놓고 엄청 싸웠어요. 주방장은 더 비싸게 팔아야 한다고 했는데 제가 가격을 많이 낮췄어요.” 듣고 보니 아내는 외식업 경험이 있는데다가 젊은 편이라서 요즘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스시 감>은 고급 일식당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성비를 높였다. Ⓒ밥상머리뉴스 - 음식을 먹어봤는데 굉장히 맛있더라. 메뉴판을 보니까 가격도 저렴하고 “정치인 출신들이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오래 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유는 인맥장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도 인맥장사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내의 경우 준비된 창업자다. 아까 아내와 주방장이 메뉴 가격 결정을 놓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만큼 음식점이 장수할 수 있는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주방장도 63빌딩에 있는 일식당에서 27년간 근무한 베테랑이다.” - 오픈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오픈 후에 다른 점이 있다면 “크게 다른 게 점심 손님이 많지가 않다. 매장이 2층인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코너라서 손님이 좀 있을 걸로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다. 내가 직접 홍보전단지를 뿌리면서 점심 손님 유치활동이라도 해야겠다.” ▲동해산 참다랑어를 손질하고 있는 주방장 허순씨, 28년차 베테랑 일식 셰프다. Ⓒ밥상머리뉴스 “8명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행복한 삶을 돕는 것이 목표” - 가게를 운영하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는가? “우리 목표는 8명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행복하게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흔히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바보 같은 말이다. 그게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월급 주고, 세금까지 내는데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 지금 자영업, 특히 외식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어려워한다. 외식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여기는 장사가 잘되지만 외식업 경영주들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는가? “솔직히 나는 귀족 자영업자다. 있는 돈으로 했고, 내 인지도나 인맥 덕도 보고 있다. 그런데 만약에 빚을 내서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진짜 어려울 것 같다. 저녁에까지 예약 없이 앉아만 있으면 막막하고, 직원들에게는 또 얼마나 창피하고 미안하겠는가. 손님 없이 비어있는 다른 가게들을 보면 얼마나 갑갑할까 싶다.” - 현재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많은 생각은 뭔가? “경제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옳다고 본다. 외식업을 해보니까 직원들이 일하는 것에 비하면 월급을 많이 못 가져가더라. 그런데 소득주도형 성장 정책은 잘못됐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소득주도형 성장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선언하면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말이다.” ▲정치인 정두언의 머리 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화두는 역시 '경제'다. Ⓒ밥상머리뉴스 “자영업자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필요해” - 다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자영업 대책을 어떻게 세우고 싶나? “자영업자를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만,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는 도태되어야 한다.’에서 끝나면 안 된다. 그들을 흡수할 수 있는 건전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고, 전업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 외식업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맞는 말이다. 너무나 할 것이 없으니까 쉽게 뛰어든다. 그러다 보니 간판장사만 잘되는 꼴이다. 진입장벽 높이는 걸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규제논란이 있지만 시장이 실패한 것에는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정상이다.” - 계속해서 외식업만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은 어릴 적부터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연기자가 되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데, 누가 날 캐스팅 해주지 않으니까 직접 드라마 제작을 하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을 다루는 내용인데,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꿈이 연기자라는 정두언씨, 앞으로 연기자로서의 역할도 기대된다. Ⓒ밥상머리뉴스 엘리트 코스를 밟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간의 삶에서 어느 순간이 가장 행복했냐는 질문에 정두언씨는 “그래도 서울시에 근무할 때”라고 회고했다. 서울시 부시장으로 일하면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함께 청계천을 복원하는 등 불철주야 뛰었던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역시 남자는 일하는 데서 성취감을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그의 나이 62세, 아직 청춘이다. 그가 내딛는 새로운 발걸음이 우리사회와 국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두고 볼 일이다.
(자세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