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당 마담이 된 정치인 정두언
【밥상인】 연기자가 꿈인 엘리트 정치인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엘리트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이른바 ‘KS’ 출신에 고위 공무원과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치인 정두언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식당 마담이다. 부인과 함께 서울 마포에서 <스시 감>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일터인 음식점에서 그를 만나 요즘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생각들을 끄집어내 봤다. (편집자 주) - 요즘 행복한가? “음식점 사업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걱정했던 것보다 일단 손해는 안보고 남는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매일이 파티 같은 기분이다.” - 어떤 면에서 행복한가? “내손으로 월급을 주는 게 신난다. 사는 것 같다. 흔히 ‘먹물(지식인)’들은 추상적인 삶을 사는데 나는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 외식업이 비즈니스 중에서도 가장 투명하고 정직한 사업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인터뷰 중인 정두언씨 Ⓒ밥상머리뉴스 “내려놓고, 낮은 데로 임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 - 그런데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낮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남편이 답변을 하기 전에 아내 구윤승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려놔야죠” 그 외마디는 남편 정두언씨가 많이 내려놨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리고 정두언씨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배울수록 나이가 들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보통 사람들은 바쁜데, 먹물들은 외롭다. 심지어 노인정에도 가지 못한다. 가게가 자리 잡으면 나비넥타이를 매고 본격적으로 서빙을 할 생각이다.” 두 부부의 입에서 나오는 ‘내려놓는다’, ‘낮은 데로 임한다’는 말 속에 행복해지는 길이 있음을 느꼈다. ▲부인 구윤승씨와 함께 매장 안에서 다정한 모습 Ⓒ밥상머리뉴스 - 음식점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아내가 나를 만나서 일이 없었다. (정두언씨는 현재의 아내를 재혼으로 만났다.) 젊은 사람이 집에만 있으니까 서로 답답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에 친정 부모님 덕분에 음식점 경험이 있으니까 하게 됐다. 일이 생겨서 서로가 좋다.” - 실제 음식점을 경영해보니까 어떤가? “처가집이 전에 복어전문점을 운영한 적이 있어서 아내가 실전 경험이 좀 있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거의 없는 편이다. 보통 처음 장사를 하면 가게가 알려질 때까지 시간이 엄청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나 때문에 저절로 알려져서 그런 고생은 안하는 것 같다.” “정치인이나 음식점 서빙이나 을의 입장은 마찬가지” - 가게에서 하는 역할이 뭔가? “다른 일식집에 가면 여성들이 서빙을 하는데 여기서는 내가 한다. 찾는 사람들이 나를 알고 찾아오니까 마담 노릇하고 있다." - 할 만한가? “정치 하면서 유권자에게 서비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어서 괜찮다. 정치인이나 마담이나 을의 입장인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걱정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잘해요.” - 손님이 꽤 많은데, 이른바 ‘오픈효과’라고 보는가? “두세 달 되었는데 장사가 잘된다. 오픈효과도 있겠지만 계속 잘 될 것 같다. 벌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뭐든지 요즘은 가성비가 중요해요. 처음 오픈할 때 주방장과 메뉴 가격 결정을 놓고 엄청 싸웠어요. 주방장은 더 비싸게 팔아야 한다고 했는데 제가 가격을 많이 낮췄어요.” 듣고 보니 아내는 외식업 경험이 있는데다가 젊은 편이라서 요즘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스시 감>은 고급 일식당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성비를 높였다. Ⓒ밥상머리뉴스 - 음식을 먹어봤는데 굉장히 맛있더라. 메뉴판을 보니까 가격도 저렴하고 “정치인 출신들이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오래 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유는 인맥장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도 인맥장사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내의 경우 준비된 창업자다. 아까 아내와 주방장이 메뉴 가격 결정을 놓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만큼 음식점이 장수할 수 있는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주방장도 63빌딩에 있는 일식당에서 27년간 근무한 베테랑이다.” - 오픈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오픈 후에 다른 점이 있다면 “크게 다른 게 점심 손님이 많지가 않다. 매장이 2층인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코너라서 손님이 좀 있을 걸로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다. 내가 직접 홍보전단지를 뿌리면서 점심 손님 유치활동이라도 해야겠다.” ▲동해산 참다랑어를 손질하고 있는 주방장 허순씨, 28년차 베테랑 일식 셰프다. Ⓒ밥상머리뉴스 “8명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행복한 삶을 돕는 것이 목표” - 가게를 운영하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는가? “우리 목표는 8명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행복하게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흔히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바보 같은 말이다. 그게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월급 주고, 세금까지 내는데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 지금 자영업, 특히 외식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어려워한다. 외식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여기는 장사가 잘되지만 외식업 경영주들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는가? “솔직히 나는 귀족 자영업자다. 있는 돈으로 했고, 내 인지도나 인맥 덕도 보고 있다. 그런데 만약에 빚을 내서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진짜 어려울 것 같다. 저녁에까지 예약 없이 앉아만 있으면 막막하고, 직원들에게는 또 얼마나 창피하고 미안하겠는가. 손님 없이 비어있는 다른 가게들을 보면 얼마나 갑갑할까 싶다.” - 현재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많은 생각은 뭔가? “경제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옳다고 본다. 외식업을 해보니까 직원들이 일하는 것에 비하면 월급을 많이 못 가져가더라. 그런데 소득주도형 성장 정책은 잘못됐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소득주도형 성장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선언하면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말이다.” ▲정치인 정두언의 머리 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화두는 역시 '경제'다. Ⓒ밥상머리뉴스 “자영업자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필요해” - 다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자영업 대책을 어떻게 세우고 싶나? “자영업자를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만,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는 도태되어야 한다.’에서 끝나면 안 된다. 그들을 흡수할 수 있는 건전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고, 전업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 외식업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맞는 말이다. 너무나 할 것이 없으니까 쉽게 뛰어든다. 그러다 보니 간판장사만 잘되는 꼴이다. 진입장벽 높이는 걸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규제논란이 있지만 시장이 실패한 것에는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정상이다.” - 계속해서 외식업만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은 어릴 적부터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연기자가 되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데, 누가 날 캐스팅 해주지 않으니까 직접 드라마 제작을 하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을 다루는 내용인데,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꿈이 연기자라는 정두언씨, 앞으로 연기자로서의 역할도 기대된다. Ⓒ밥상머리뉴스 엘리트 코스를 밟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간의 삶에서 어느 순간이 가장 행복했냐는 질문에 정두언씨는 “그래도 서울시에 근무할 때”라고 회고했다. 서울시 부시장으로 일하면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함께 청계천을 복원하는 등 불철주야 뛰었던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역시 남자는 일하는 데서 성취감을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그의 나이 62세, 아직 청춘이다. 그가 내딛는 새로운 발걸음이 우리사회와 국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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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70부터, 도전은 계속된다”
【외길인생】 한국 피자업계 대부 성신제

국내 외식업계에는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도 많고 실패자도 많다. 그런데 성공스토리는 많은데 자신의 실패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기 여러 차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온 원로 외식사업자가 가슴으로 말하는 성공한 이유와 실패한 이유,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후진들에게 귀감이 될 듯하다. 밥상머리뉴스가 국내 피자업계의 대부(代父)인 성신제 前 성신제피자 대표를 만나 봤다. <대담: 김병조 발행인> 1985년에 피자헛 1호점을 오픈한 국내 피자1세대 ▲학벌 좋은 사람이 어떻게 해서 피자업계에 입문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성신제 대표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무역회사에서 주방용품을 취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출장을 다니면서 피자헛을 알게 되었고, 피자헛을 상대로 거래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회사에 밴더(상품공급자)로 들어가게 되면 항상 손해를 보는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맹점을 운영하게 되면 ‘갑’이 된다. 주방용품 수출을 더 화끈하게 하려면 가맹점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피자헛 본사를 상대로 가맹점 운영 상담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피자헛 본사를 상대로 뭘 어떻게 했기에 무역회사 직원이 피자전문가가 되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한국에서 피자헛 매장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 뉴저지에 있는 본사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국내 유명 대기업들이 지원을 한 상태에서 면접을 하게 되었는데, ‘직원이 몇 명이냐, 사업 이력은 어느 정도냐 등의 질문을 듣다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떨어지겠다 싶어서 어깨를 뒤로 빼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오히려 내가 질문을 했다. 레스토랑의 타깃이 무엇이냐부터 시작해서 경쟁사 맥도날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도발적인 질문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서비스산업의 사회적 인지가 낮아서 고객 클레임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며 고학력을 가진 내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고객들과 직접 마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의 명문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출신인데, 그런 내가 직접 피자를 만들고, 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말했더니 면접관이 다른 대기업들과의 면접약속을 취소하고 나와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1985년 국내에 처음으로 피자헛 매장을 오픈한 장본인이 된 것이다. ▲서초구 양재동 공방에서 인터뷰 하고 있는 성신제 대표 Ⓒ밥상머리뉴스 ▲매장을 처음 낼 때 나름대로의 초심이 있었을 텐데 그 초심이 뭐였나. 사실 레스토랑에 대해 전혀 몰랐다. 미국에 출장가면 주방에서 내가 수출한 기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정도만 보고 했던 사람인데 막상 레스토랑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외식업계에 발을 들여놓으니 국내의 상황이 너무 비관적이었다. 86년에 아시안게임, 88년에는 올림픽이 열리는데도 서울에 외국인들이 갈만한 곳이 없었다. 외국인들이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이 이태원 일대 뿐이었다. 이태원의 맥도날드, KFC, 버거킹 등이 전부였다. 당시 한식당은 창피한 곳이었다. 특히 위생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피자헛이 가지고 있던 인테리어 데코 매뉴얼을 활용해 작품 하나 만들고 싶었다. ‘가족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 ‘대신 호텔보다 엄청 저렴한 가격’,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깜작 놀랄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초심이었다. ▲그때 그 초심을 사업하는 내내 지켜냈는가?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인력문제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 당시에 피자헛 미국 본사 교육담당 트레이너를 불러서 직원들 교육을 시켰는데, 트레이너는 한국말을 못하다보니 영어 동시 통역사를 썼지만 통역사가 레스토랑 전문용어를 전혀 몰라서 문제가 발생했다. 85년에 시작해서 93년에 매장을 52개까지 오픈했는데 직원들이 늘어나는 스피드에 교육을 맞춰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교육을 했던 직원들과 나중에 커지면서 배출되는 직원들과 차이가 있었다. 왜 초기처럼 교육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있다. ▲그렇게 키운 피자헛이 지금은 형편없다. 안타까운 생각도 들 텐데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피자헛의 문제를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여자의 화장과 같다. 93년도에 피자헛을 그만둘 때까지 본사와 매일 싸웠던 부분이 기름의 사용량이었다. 내가 보기엔 피자를 구울 때 쓰는 오일과 토핑이 너무 많다. 기름이 많을수록 고소해지고, 소비자들은 중독이 되기 때문에 본사에서는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나오고 난 후에 전문경영인을 데려왔는데, 전문경영인들은 고객의 건강보다는 자기 임기 중에 매출을 많이 올리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또 기름을 많이 쓴다. 그리고는 화장하듯이 또 토핑을 요란스럽게 올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내서 가격은 할인을 하고, 그렇게 하면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일시적으로 매출은 오르겠지만 화장을 지우고 민낯으로 나왔을 때, 그것이 더 좋은 것인데도 그것에 관심이 없게 된다. 그러면 또 화장을 진하게 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매니저먼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성신제 대표 Ⓒ밥상머리뉴스 “외식업을 기업적으로 성공하려면 매니지먼트가 중요” ▲그동안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과거를 되짚어보기도 했을 텐데,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의 키포인트를 꼽는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점에 대해 아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들은 “아빠는 피자 만드는 장인이지 사업가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나는 피자나 케이크를 만들 때 항상 현장에서 직원들과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다시 말하면 나는 늘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될 때와 안 될 때를 비교해보니까 잘 될 때는 내 뒤를 뒷받침해주는 스텝들이 있었는데, 안 될 때는 그런 스텝들이 없었더라. 나는 똑같았는데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혼자서는 가게 하나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크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많은 부분을 희생해서라도 스텝들을 잘 갖춰야 한다고 본다. ▲지금 만약에 창업자금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난 다시 피자 사업을 할 것이다. 지금도 피자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면 새로 하고 싶은 피자는 어떤 컨셉의 피자인가? 기본에 충실한 피자다. 지금 국내에서는 해괴한 피자들이 돌아다니는데 원산지인 이탈리아에서는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다. 이탈리아에서의 피자는 아직도 화장을 하지 않는다. 담백한 도우에 토마토 페이스트와 자연치즈, 심한 경우엔 이 상태에서 아무것도 뿌리지 않고 이것만 넣어도 엄청나게 맛있다. 우리는 지금 기초에서 너무 많이 벗어났다. 이렇게 하다 보면 개인이 하는 동네 피자가 점점 사양길에 들어갈 것이다. 피자 시장 자체는 무너져가고 있는데 이걸 회복하려면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방식대로 기초에 충실한 컨셉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좋지만 이에 문제되는 것은 서빙 속도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시킨 것이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탈리아 전통 화덕을 사용해 기초에 충실한 피자를 만들면서도 서빙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켜 만드는 컨셉을 미국에서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을 배워서 이탈리아 스타일과 미국의 빠른 베이킹을 같이 접목시켜 만들어보고 싶다. ▲‘창업자금 7만2천원’이라는 책을 내놓았는데, 이 책에서 예비창업자들에게 던지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 외식업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태도, 제품에 대한 태도, 경영인의 자세 등의 내용을 담았다. 창업에서 중요한 것은 자빠지더라도 자빠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어나느냐, 안 일어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두면 안 된다. 일어날 생각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성신제 대표의 저서 '창업자금 7만 2천 원' Ⓒ밥상머리뉴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 없으면 창업하지 마라” ▲요즘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단기간에 폐업하는 사람도 많다. 예비창업자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을 주문하고 싶은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워라벨, 스라벨, 골라벨 등 삶의 균형을 중요시 여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창업하는 사람들은 워라벨 등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해야지..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창업을 하지 말고 일평생 직장에서 참고 살아야 한다. 내 경우는 피자헛 사장이었음에도 라면 한 그릇을 먹을 때도 직원들을 배려해 통로 계단 구석에서 먹으면서 일했다. 남들이 보기엔 사장이라 하니 굉장해 보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굉장히 치열하게 죽기 살기로 일에 몰두했다. 워라벨 등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창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 ▲HMR시장의 급성장 등으로 외식업이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외식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점점 GDP가 올라가고 있다. 소득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HMR이 잘 나오더라도 한 끼 고급스러운 식사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는 커지기 마련이다. 그 대신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느냐 못하느냐가 관건이다. 고객의 니즈는 분명히 있으니 거기에 맞출 수 있는 질 높은 메뉴나 서비스가 개발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성신제 대표는 피자헛에 이어 자신의 이름을 딴 <성신제피자>로 피자업계에서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조그마한 공방에서 어렵게 재기를 꿈꾸고 있다. 컵케익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칠순의 나이에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워 보였다. 30년 넘게 외길을 걸었으면 징그러울 만도 한데 그를 다시 꿈꾸게 하는 이유는 뭘까? 그가 말한 것처럼 “외식업은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기 때문에 하루 일을 시작할 때마다 흥분되고 설레는 엄청난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리: 백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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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인생】 “와인, 소주 마시듯이 마셔라”
와인 외길 32년, 한국와인협회 김준철 회장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와인잔을 조심스럽게 닦고 있었던 와인 스쿨의 김준철 대표. 그의 첫인상은 와인잔에도 애정을 다해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다. 김준철 대표는 30여 년간 와인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한 한국 와인제조 1세대이다. 와인 스쿨을 운영하며 와인을 만드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소비자들까지 와인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있는 ‘와인 교류 장인’인 한국와인협회 김준철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 와인산업의 역사와 현주소를 들어봤다. 외길 30년, 국내 와인제조 1세대 김준철 대표는 제약회사의 곰팡이 배양 발효 분야에서 일했다. 회사는 와인 제조업에도 손을 댔는데, 이 인연으로 와인인생이 시작됐다. 대부분은 유통판매를 시작으로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김대표는 와인 제조부터 시작한 것이다. “약 30년 전인 86년도 당시에는 오히려 수입와인은 잘 안되고 국내와인이 잘나가던 때였죠.” 현재의 와인시장을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김대표는 1988년 수입시장이 열리기 전 와인시장은 대중화가 되기 전이라 1년에 1인당 와인 소비량이 0.1병일만큼 규모가 작았지만 국내 주류업체의 와인 개발은 활발했다고 한다. 86년도 국내 와인 브랜드는 마주앙, 해태의 노블와인, 진로의 샤또 몽블르, 금복주의 두리랑 등 약 5~6개의 대표와인이 있었다. 현재 소규모 기업에서 와인을 제조하는 것과는 달리 그 당시엔 대기업에서 와인 제조가 활발했다. 당시 김대표의 와인 브랜드는 수석농산에서 만든 ‘위하여’. 그러나 그때 당시 국내 와인 제조회사는 와인시장이 개방되자 국내와인 제조를 포기했다. 맛이나 품질이 같다하더라도 사람들이 국산와인보단 프랑스 와인을 더 찾았기 때문이다. “와인시장을 개방할 때 수입권한을 제조회사에 먼저 줬는데, 제조하던 사람들이 수입와인이 더 잘 팔리니까 국내와인을 안 만들지요.” ▲ 인터뷰 중인 김준철 대표 ⓒ밥상머리뉴스 오히려 퇴보된 국내 와인 제조시장 “지금 국내의 와인제조기술력은 30여 년 전과 비교하면 더 뒤쳐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대표는 “와인은 과학을 토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30여 년 전 당시는 양조 방식에 대한 기초를 알고 있던 대기업이 받쳐주니 상당히 잘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대기업은 포기하고 개인 또는 중소기업이 하고 있으니 양조의 지식 면에서나 기술 면에서나 뒤떨어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더 큰 문제는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국와인제품 소비비율이 30%나 된다. 포도는 습도가 낮은 지역에서 재배해야 우수한 품질이 나올 수 있는데,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습도가 높지만 산토리 같은 대기업에서 꾸준히 몇 십년 동안 연구해 자국 와인 소비비율을 유지해오고 있다. 국내 와인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포도 신품종 개발, 6차 산업에 힘쓰는 등 틈새시장 공략해야 우리나라에서도 국내와인 개발에 집중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개발하고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앞으로 국산와인의 비전은 없냐고 물었다. ▲ 인터뷰 중인 김준철 대표 ⓒ밥상머리뉴스 “와인 제조의 비전은 미약하다고 봐야 하지만 틈새시장은 분명히 있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처럼 역사가 2~3천년 된 곳과의 대결은 불가능하다. 따라잡는다는 것은 한참 세월이 흘러야 하는 것이고, 차라리 포도 신품종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더 경쟁력 있다는 의견. 우리가 지금 와인제조에 사용하는 포도의 품종은 식용 미국포도인데 이것을 양조용으로 교잡을 시켜 신품종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관광, 체험 같은 6차 산업 도전도 추천했다. 국산와인업체들이 와인을 팔아서 수익을 남길 생각보단 지방 내 최고의 와인으로 자리를 잡아 그 지방 음식과 매칭 시킨 와인이 팔리게끔 만들면서 천천히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아야한다는 의견이다. 와인 전문가의 눈으로 본 전통주의 약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무엇이냐’란 물음에 소주라 대답한 김대표는 전통주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한다 함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많이 마셔야 하는데 100년 동안 밀주로 전통주의 맥이 끊어졌었다는 점, 발굴해서 이제 막 새로 만들어가고 있느라 대중성이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전통주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대중화를 위해선 일정한 맛을 유지시켜라는 조언도 했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가내수공업이란 이미지가 박혀있지만 술이란 과학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술의 맛이 일정하지 않아 제품으로서의 가치가 하락된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주를 만드는데 과학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개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와인을 어렵게 생각 말고 소주 마시듯이 접근해라 CEO대상 설문조사에서 스트레스 1위로 뽑힌 것이 와인에 대한 상식이다. 그만큼 와인은 어렵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김대표는 접근을 어렵게 하지 말고 쉽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가 쓴 책 <와인>의 첫 장 첫 절, 첫 제목인 ‘와인 마시는 법은 없다’가 이를 대변해 준다. ▲ 김준철 대표가 쓴 책 <와인>의 첫 장 ⓒ밥상머리뉴스 또한 와인에 대한 상식 중 잘못된 점을 몇 가지 꼽았다. 와인 잔의 볼 부분을 손으로 잡으면 와인의 온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란다. 마실 때 몇 초 잡는다고 와인의 온도가 변질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들고 오래 돌아다니면 온도가 올라가겠지만 잠깐 잡는다고 온도가 변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와인을 바로 마시지 않고 향을 먼저 맡아봐야 한다는 것은 와인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이 하는 방법이지 마시는 자리에서는 오히려 실례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와인에 대해 제일 중점적으로 공부해야할 것은 와인 제품에 대한 가치입니다.” 김대표는 라벨을 보고 비싼지 알아야 하고 그에 맞게 태도가 달라져야하는 상황에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국제무대에서는 대화를 풀어나갈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이 와인이다. 세계로 나가서 활동할 때 대중적으로 쓰이는 술이기에 김대표는 다른 나라와 교류가 많은 사업자들에겐 “와인은 영어 배우듯 배워라”라고 당부했다. 의식주가 모두 서구식으로 바뀌었기에 그에 맞춰 따라가야 한다며 비유를 하자면 국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를 배우자는 것이다. ▲ 세계의 포도밭 지도를 배경으로 한 김준철 대표 ⓒ밥상머리뉴스 김대표는 인터뷰가 끝나고 연구하고 있는 사과 와인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와인을 그저 술의 한 종류로만 보지 않고 세계의 공통언어로 여기고 있는 그는 마치 하나의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앞으로도 이러한 열정이 소비자들과 와인제조업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국내 와인의 큰 기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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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내 최초 ‘쿠키아티스트’ 이경란 대표
20년의 세월을 쿠키와 함께 한 운명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직업으로 인해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분명 행운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쿠키아티스트 이경란(48) 대표는 행운아라고 감히 말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머릿속에 온통 쿠키 생각뿐이라는 이 대표. 쿠키를 만든 지 20년이 넘었다는 이 대표의 목표는 처음과 똑같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멋있는 쿠키를 만드는 것이다. ▲ 쿠키 아티스트 이경란 대표 연구실에서 ⓒ 밥상머리뉴스 쿠키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도구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던 이경란 대표는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이 대표가 유일하게 적극적이고 활발해지는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외교관 모임을 위해 어머니를 도와 각종 음식을 준비할 때였다. 이 대표가 주로 맡았던 것은 디저트, 그 중에서도 쿠키를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이 만든 쿠키를 손님들이 먹고 맛있다고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그 때부터 쿠키와의 인연이 시작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으로 돌아 온 이 대표는 전공을 살려 호텔에 입사를 했다. 한국어에 서툴렀던 탓에 자연히 외국인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음식 관련 얘기가 마냥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그러다보니 외국인 셰프들과 친분을 쌓을 기회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이 대표는 직장 동료들과 간식으로 먹거나 선물을 줄 용도로 집에서 짬짬이 쿠키를 만들었는데 이를 먹어 본 외국인 셰프들의 반응이 좋았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디저트, 특히 수제쿠키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였지만 외국인 셰프들은 디저트 분야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였다. 동료 셰프들은 이 대표의 쿠키를 극찬했고 전문적으로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권유했다. 쿠키 만드는 것은 단순히 취미였기에 처음에는 웃어 넘겼지만 셰프들의 계속되는 칭찬과 조언들을 계속해서 듣다보니 이 대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좀 더 맛있고 멋진 쿠키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 갔다. 그리고 그런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2000년도에 쿠키 쿠킹 클래스와 쿠키연구소를 운영하게 된다. 쿠키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가 어려워 이제는 케이크와 더불어 수제쿠키도 하나의 디저트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2000년대 처음 쿠킹 클래스를 열 때만해도 수제쿠키하면 아이들이나 먹는 비싼 서양과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많은 고생을 했지만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그래도 이 대표의 쿠키에 대한 열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쿠킹 클래스를 하면서 많은 독창적인 레시피를 연구하고 개발했고, 이것은 현재 이 대표가 만드는 쿠키들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00년대 중반 조금씩 수제쿠키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제작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납품처가 다양화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협업을 통한 쿠키 레시피를 개발하여 납품하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이는 납품자가 레시피를 개발하고 생산방법과 품질관리 요령을 제시하면 납품처에서 제시한 레시피를 수정, 보완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쿠키업계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냉소를 보냈다. ▲ Chaine Des Rotisseurs 회원들과 함께 ⓒ 엠피에스 연구소 제공 여자라고 무시,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다고 무시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 대표의 다양한 시도는 계속됐고 드디어 2011년, 쿠키연구소를 ‘MPS(Michele Petite Sweets) 스마트 쿠키 연구소’로 사명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그러나 국내에 없던 ‘쿠키아티스트’라는 분야를 도입하다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이 대표가 가장 주력하는 것은 쿠키에 대한 연구와 개발, 그리고 레시피를 제공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이 ‘고작 과자 나부랭이’를 만들면서 무슨 연구를 하고, 과자에 무슨 대단한 레시피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또한 여자라고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고,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것을 보고 얕잡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레시피를 제공하고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 이경란 대표가 디자인하고 만든 쿠키와 쿠키 포장 ⓒ 엠피에스 연구소 제공 대한민국 최초의 ‘쿠키아티스트’임을 자부하다 그렇다면 쿠키아티스트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쿠키아티스트란 쿠키와 관련된 모든 사항 즉, 제품콘셉 및 레시피 개발, 생산제조와 방법지도 및 제품 품질관리, 생산시설 및 판매시설 자문, 포장 패키지 디자인 연구 및 개발 등을 컨설팅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특히 주력하는 것은 쿠키의 연구와 레시피의 개발이다. 물론 이 대표도 자신을 쿠키아티스트라고 소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좀 더 맛있고 색다른 쿠키를 개발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를 했고, 맛과 멋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하여 쿠키 이외에도 다른 음식 분야에 대한 공부도 해야 했다. 그리고 제품의 감성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포장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연구·개발 중이다. 외국에서도 단순히 쿠키를 제조하는 전문가들은 많지만, 이렇게 쿠키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전문적으로 컨설팅하는 쿠키아티스트가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이 대표가 자신을 ‘쿠키아티스트’라고 명명한 것은 수제쿠키가 케이크처럼 디저트 음식으로 확고히 정착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체계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렇게 쿠키를 만들고 고객에게 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쿠키아티스트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때문에 쿠키아티스트라는 분야가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하고 자신이 그것에 기꺼이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맛과 건강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스마트 쿠키 MPS 스마트 쿠키 연구소가 현재까지 개발해서 보유한 레시피는 총 170개, 생산된 쿠키의 종류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 MPS의 기본 방향은 맛과 건강을 함께 생각하는 쿠키를 개발하는 것이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스마트 쿠키다. 이 쿠키는 화학재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천연 재료들로 만들어진다. 無글루텐, 無방부제, 無인공색소 등의 원칙을 지키며 만들어지는 MPS의 스마트 쿠키는 철저히 주문제작 방식으로 생산·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추나 녹차, 유자 등의 재료를 활용한 쿠키를 개발하는데도 주력하는 중이다. 아직 대중화에 초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이 대표는 케이크가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간식·후식으로 자리 잡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으니, 수제쿠키가 대중화되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MPS의 수제쿠키는 현재 국내의 호텔이나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과 제2 롯데월드에 입점된 카페에서 판매 중이다. ▲ 이경란 대표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 밥상머리뉴스 화려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삶 외교관인 아버지 덕에 외국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을 외국에서 지냈고, 지금도 직업 특성상 많은 행사와 파티에 초대되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대표의 삶이 굉장히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신의 삶이 화려하면서도 화려하지 않다고 말한다. 향수냄새가 날 것 같은 이 대표의 몸과 집에는 항상 쿠키 냄새가 배어 있고, 손은 건조해서 갈라져 있으며, 오븐에 데어서 화상 자국이 없어질 날이 없다. 또한 이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는 방산시장에 가는 것이다. 주차공간이 없어 갈 때마다 고생스럽지만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물건을 사고 쿠키 레시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그리고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드라마 보는 것으로 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이기도 하다. 쿠키는 내 운명 어머니를 도와 쿠키를 만들기 시작해서 우연한 기회에 쿠키 만드는 일을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이 대표가 셀 수 없이 많은 쿠키를 만드는 사이에, 쿠키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의 디저트 시장이 커지면서 수제쿠키를 즐겨 먹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처음에 작은 쿠키 쿠킹 클래스를 시작할 때의 목표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멋있는 쿠키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지금도 그 목표는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무모하지만 다양하게 쿠키와 관련된 일을 개척하고 있다. 실험적인 도전에 금전적 손해도 많았고, 지금도 상업적으로 계산을 잘 못한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가 계속 쿠키를 만드는 것은 쿠키를 만들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밤이나 낮이나 꿈속에서도 쿠키 생각을 한다는 쿠키쟁이 이경란 대표는 오븐 앞에 서서 쿠키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릴 때가 가장 흥분된다고 말한다. 우연히 시작했지만 운명이 되어 버린 쿠키아티스트. 이 대표는 이 직업이 쿠키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수제쿠키가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디저트 음식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사진: 이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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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전설이 될 <전설의 치킨>
최가네푸드(주) 최창우 대표가 전하는 프랜차이즈 상생

각종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갑질과 부도덕한 행위가 프랜차이즈 사업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요즘, 프랜차이즈 본래의 목적인 ‘가맹점과의 상생’을 외치며 처음의 경영 방침을 고수하는 경영인이 있다. 바로 치킨 브랜드 <전설의 치킨>을 운영하고 있는 최가네푸드(주) 최창우 대표다. 지난 14년간 폐점율 0%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최가네푸드(주)의 최창우 대표가 생각하는 프랜차이즈 상생이란 무엇인지, 또 이를 실천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밥상머리뉴스>에서 들어봤다. ▲<전설의 치킨> 민락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창우 대표 ⓒ 밥상머리뉴스 #. 프랜차이즈는 ‘돈 없는 사람이 돈 벌게 해주는 것’ 프랜차이즈는 본디 본사가 가맹점주들을 꾸준히 관리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상생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사업의 형태다. 그러나 최근 프랜차이즈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제대로 된 관리는 하지 않으면서 가맹점 수만 늘리는 기업도 상당수가 생겨났다. 최 대표는 ‘갑질’보다는 ‘상생’에 초점을 두고 늘 가맹점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4년 째 그의 경영신념은 변치 않았고, <전설의 치킨>은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가며 성장하고 있다. 최근 기록적인 AI 사태 때문에 닭고기 가격이 심하게 요동쳤을 때 최 대표의 신념이 빛났다. 본사는 가맹점들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최 대표의 뜻으로 닭고기 가격 파동이 일어나기 전과 동일한 가격으로 닭고기를 공급했던 것이다. 손해는 고스란히 본사의 몫이 되었지만 최 대표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지금처럼 주저 없이 가맹점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 밥상머리뉴스 “닭고기 같은 신선제품은 시세가 매번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다고 해서 가맹점주들에게 그 부담을 모두 넘길 수는 없죠. 가맹점주 분들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본사에서 그 가격충격을 감당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사란 게 원래 매달 똑같은 금액을 벌수는 없잖아요? 최소한의 수익은 보장해 줘야죠.” 식재료의 시세에 따라 공급가격을 인상하면 점주들이 어려워질 것 같아 본사가 리스크를 감수했다는 최 대표는 이런 것이 바로 ‘상생의 과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상생을 위한 최 대표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전설의 치킨>을 론칭하기 전에 운영하던 <최가네 치킨>을 비롯해 최 대표와 손잡은 66개의 가맹점은 아직까지 단 한곳도 폐점을 한 곳이 없다. 점주가 바뀐 경우도 있었고, 더 큰 사업지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단 한곳도 문을 닫은 곳은 없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것이 상생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설의 치킨> 민락점 ⓒ 밥상머리뉴스 #. 저렴하지만 품질은 보장! 맛과 가격을 동시에 잡은 ‘최씨 고집’ <전설의 치킨>은 매장에서 먹을 때와 포장해서 갈 때의 가격이 약 1,000원 가량 차이가 난다. 테이크아웃 가격은 9,900원이고 매장에서 먹으면 11,000원 이다. 이처럼 메뉴의 가격이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가맹점들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까닭은 본사가 유통 등의 중간비용을 과감히 제거한 것이 주효했다. 본사는 개별 가맹점보다는 구매력이 좋기 때문에 본사에서 대량으로 닭고기를 구입하여 최 대표가 직접 개발한 염지법으로 염지를 한다. 이를 각 가맹점에 저렴하게 공급해 물류비를 낮춰 가맹점주들의 이윤을 더욱 높이는 데 한몫했다. 또한 배달을 하지 않고 매장 판매만을 고집해 착한 가격과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 맛을 동시에 잡았다. “배달을 하지 않는다는 건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한 원칙이에요. 배달을 하게 되면 사실상 가맹점주들에게 비용적 부담이 크게 가게 되죠. 전설의 치킨은 여성 창업자들도 많은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배달을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배달을 시작하면 배달 위탁업체와 연계를 하지 않을 수 없죠. 그렇게 되면 결국 매장의 수익이 줄어들게 되요. 힘들게 일하면서도 비용은 비용대로 빠지고 이윤은 얼마 남지 않죠. 그래서 배달을 하지 않음으로써 가맹점주는 비용 부담을 줄이고, 손님들에게도 착한 가격으로 치킨을 판매할 수 있게 됐어요.” ▲<전설의 치킨>에서 판매중인 치킨과 떡볶이. 이 외에도 다수의 메뉴가 판매되고 있다. ⓒ 밥상머리뉴스 #. <전설의 치킨>이 외식시장의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트렌드에 민감한 외식업계에서는 빠른 트렌드 변화를 먼저 읽고 대응하는 업체가 살아남는다. 최 대표도 10여 년 이상 외식업계에 몸담으면서 이러한 진리를 일찍이 깨달은 바가 있다. R&D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전설의 치킨>의 시그니처 메뉴인 ‘치킨 떡볶이’를 직접 개발할 만큼 R&D에도 관심이 많다. 치킨 떡볶이를 처음 개발했을 때는 ‘치킨집에서 왠 떡볶이?’ 라는 반응도 많았다. 심지어 직원들조차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 메뉴가 메인 메뉴인 치킨 못지않게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효자 메뉴가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최가네 치킨을 운영할 때만 해도 치킨집은 치킨만 맛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다른 건 일체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랜 시간 운영을 하다 보니 치킨만 주력으로 하면 안될 것 같았죠. 그래서 브랜드를 <최가네 치킨>에서 <전설의 치킨>으로 리뉴얼하면서 치킨 떡볶이를 메뉴에 넣었어요. 우리가 어릴 때 떡볶이를 먹으면서 간혹 튀김이나 순대같은 것을 국물에 찍어먹었잖아요? 그걸 생각해서 순살 치킨과 접목시킨거죠.” 또한 가맹점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최 대표는 본사 직원을 두고 ‘일당 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설의 치킨>본사의 수퍼바이저들은 매일 오전에는 본사에서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고 점포들이 문을 여는 오후시간에 맞춰 각각 지정된 점포를 방문해 매장 상태 및 주방 청결, 식품 유통기한 점검, 손님 응대 체크 등을 돕고 매장 점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최 대표는 한 달에 두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수퍼바이저가 매장을 방문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을 통해 각 가맹점들의 건의 사항이나 문제점 등을 전달받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 대표는 그들이 무척 고생스럽겠지만 척박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바쁘게 일을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 중인 최 대표 ⓒ 밥상머리뉴스 #.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것 최 대표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며 가맹점과의 상생을 부르짖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는 돈 없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돈을 벌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상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가맹점주분들이 모이면 ‘당신들의 능력 1%씩만 발휘하면 본사가 그 능력을 모아 100%를 채우겠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최 대표는 14년 째 사업을 이어가면서 가맹점 수가 48개면 매우 적은 숫자이지만 단 하나의 폐점도 없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최 대표의 영업력이 떨어져서 가맹점을 늘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능력은 되지 않으면서 몸집만 키우려 하면 저절로 갑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믿는 최 대표의 경영 철학이 있기 때문에 순수한 입소문만으로 가맹점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1, 2년만 하고 그만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 함께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독특하고 이색적인 분위기의 <전설의 치킨> 매장. 최 대표의 위트가 돋보인다. ⓒ 밥상머리뉴스 #. 먹고 살기 힘들어 시작했던 치킨집, 이제는 상생의 아이콘으로 부상 최 대표와 치킨은 인연이 깊다. 어린 시절부터 달걀 장사를 시작했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시장 안에서 본격적으로 닭장사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미미했으나 단골 고객이 늘어나고, 매출도 갈수록 올라가 이대로 쭉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다. 새로운 사업으로 눈을 돌려봤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빈털터리가 된 그에게 남은 것은 닭장사를 하며 익혔던 노하우와 작은 평수의 가게뿐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전설의 치킨>의 초석이 된 <최가네 치킨>을 시작했다. 치킨 사업으로 다시 성공의 반열에 오른 그는 한국에서 더욱 내실있는 기업으로 자리잡은 후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다고도 전했다. 직접 염지법과 메뉴를 개발하고, 건강한 맛을 추구하고, 그러면서도 저렴한 가격을 갖춰 고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전설의 치킨>이 최 대표가 좋아한다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프랜차이즈업계의 ‘모범 상생 표본’으로 창대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 이진하 기자 창업문의 : 02) 938-9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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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텃밭에 뭘 심어야 할지부터 고민이다”
【특별 인터뷰】 초보 농사꾼이 된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정책의 수장이었다가 다시 흙에서 살고 있는 사람, 남은 것은 책과 5평짜리 공부방 밖에 없는 사람, 올봄 집 앞 논밭에 무얼 심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농식품부 역사상 최장수 장관을 지낸 이동필이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찾아 초보 농사꾼이 된 그의 머리와 가슴 속을 들여다보았다. <대담: 김병조 발행인> “농기계도 없고, 뭘 심어야 할지도 막막하고” 사진(위) 상처 투성이가 된 이동필 전 장관의 손, 사진(아래) 농사일 하는 모습ⓒ밥상머리뉴스 ▲일종의 귀농을 했는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어머니 연세가 85세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혼자 생활하시기에 불편한 상태다. 퇴직을 하고 서울에 있으면 친구도 있고 술 마실 기회도 많고 한데 그동안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시골집에 가서 어머니랑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기회가 되면 말 그대로 주경야독을 하고, 크진 않더라도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막상 낙향을 해보니까 어떻던가? 어느 날 새벽에 노계 박인로 선생이 쓴 ‘누항사(陋巷詞)’라는 시를 읽다가 아내와 한참 웃었다. 노계 선생이 낙향을 해서 농사를 지으려고 할 때 소가 없어서 고민을 했는데, 나도 농사를 지으려는데 농기계가 없어서 고민이다. 이웃에 빌리자니 미안하고 사자니 돈이 많이 들고 난감하다. 올 봄에 밭에 뭘 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노계 선생과 처지가 같아서 부부가 웃었다. (노계 박인로 선생은 조선 선조 때의 문인으로 ‘누항사’는 그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생활하던 중에 친구 이덕형이 찾아와 사는 형편을 묻자 이에 화답하는 뜻으로 지은 가사다. 그 가사 중에는 몸소 농사를 짓고자 하나 소가 없어 낙심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 전 장관은 자신의 처지가 딱 그렇다고 웃으며 말했다.) 공부방인 '사원재'에서 인터뷰 하는 이동필 전 장관 ⓒ 밥상머리뉴스 ▲농업정책의 수장 역할을 하다가 초보 농사꾼이 되었는데 농촌 현실이 어떻던가? 얼마 전에 모교인 초등학교의 졸업식에 다녀왔는데 내가 졸업할 때는 졸업생이 2백 명 정도 되었는데 올해 졸업생이 다섯 명 뿐이더라. 이게 현재 농업과 농촌, 지역경제의 현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집 아랫집부터 세 집이 다 비어 있다. 단촌으로 내려올 때 사람들이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주고 그래서 난 내가 정말 잘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아니더라. 스스로 반성을 많이 했다. ▲장관 시절에 ‘이동필의 일이삼사’를 실천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실천하나. 장관 시절 ‘이동필의 일이삼사’는 한 달에 두 번 이상 현장을 찾아가서 세 시간 이상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통을 한다는 뜻이었다. 3년 6개월 재임기간 동안 붉은 점퍼를 입고 27만 킬로미터를 달려 761곳의 농업·농촌 현장을 다니면서 현장 사람들과 소통을 했다. 그러나 단촌에서의 일이삼사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하루에 두 차례 논이나 밭에 나가 보고, 삼시세끼 어머니랑 머리 맞대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동무를 하자는 뜻으로 바뀌었다. 잘한 것보다 아쉬운 게 많았던 3년 6개월의 장관시절 농업과 농촌을 걱정하는 이동필 전 장관 ⓒ 밥상머리뉴스 ▲장관 재임 기간 동안 이룬 성과 중에서 이것만큼은 보람됐다고 생각하는 게 어떤 것들인가. 국민들 관심사로 봐서는 쌀 관세화가 아닌가 싶다. 역사적으로 어려웠지만 힘든 결정이었는데 농민단체들과 여러 사람들이 내 말을 잘 이해해주고 동의를 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밖에도 한중FTA나 스마트팜, 6차산업 활성화, 배려농정 등과 같은 성과는 보람으로 생각한다.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을 텐데 ‘농가유형별육성’ 정책을 마무리짓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나라 농가가 160만 가구 정도 되는데 그 중 15만 가구 정도가 65세 미만에 연간 소득이 5천만 원이 넘는다. 그러나 전체 농가의 60% 이상은 65세 이상의 고령농이다. 이 가구는 연간 소득이 5백만 원이 채 못된다. 이러한 농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농가유형별육성’이다. 부농에게는 보조금을 주기 보다는 융자를 해주고 경영컨설팅을 해주는 방향으로 하고, 고령농에게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여생을 먹고 살 수 있는 보조금 혜택을 주고, 중간단계에 있는 농업인에게는 6차산업을 다각화해서 일자리를 창출해주자는 것이다. (이동필 전 장관은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농가유형별육성’이 꼭 필요하다며 이 사업이 정책과 연결돼서 실효를 거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낀다는 이동필 전 장관 ⓒ 밥상머리뉴스 “식품정책에 철학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 ▲2008년부터 식품산업의 주무부처가 되었지만 농식품부 전체 예산에서 식품분야 예산은 고작 5% 안팎일 정도로 미미하다. 식품산업을 육성하면 농업도 동반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을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도 못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쉬운 점이 많다. 식품관련 예산을 늘리려고 하면 농업 쪽에서 반발을 한다. 또 식품제조업이나 외식업 모두 식품위생법에 근거해 보건복지부가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간 밥그릇 싸움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식품산업을 농정의 한 부분으로 하고, 국내 농업과의 연계, 나아가서 국민건강과의 연계 고리를 분명히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식품정책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건강하게 한다든지, 굶는 사람이 없게 한다든지 이런 게 있어야 된다. 그런 비전이 없고 뿌리가 없어서 아쉽다. (이동필 전 장관은 이러한 식품정책에 철학을 갖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정책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바른 먹거리와 올바른 식생활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어릴 때부터 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하며, 그래야 우리 농산물이 조금 비싸더라도 사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망원경으로 보다가 현미경으로 보는 세상은 달라” ▲농업과 식품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학자로 있을 때와 장관직을 수행할 때, 그리고 낙향한 후에 차이는 뭔가. 본질적인 것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학자로 볼 때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막 얘기를 하는 것이고, 집행하는 입장에서는 예산은 있느냐 등 현실적인 면에서 본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그리고 여기 와서 보면 전에는 망원경으로 보다가 지금은 현미경으로 보는 것 같다. ▲다시 장관을 하게 된다면 이렇게 해보고 싶다는 것이 있는가. 3년 6개월 동안 자동차 주행거리가 27만 킬로미터나 될 정도로 나름대로 현장에 많이 갔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부족했다는 생각을 한다. 현장에 가보면 정부의 농업정책이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진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다시 장관이 된다면 또 현장을 찾아가 더 많이소통을 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 ▲농업분야에도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무엇부터 손을 데야 한다고 보나. 농업은 줄어드는데 농업 유관 기관들은 비대해지고 있다. 엄청난 모순이다. 유관기관에서 일하는 분들도 고생하는 건 알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농업 유관기관의 방만한 운영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문제는 말로 해결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더 각오를 하고 수술 같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이 그런 게 아닌가. 농업 부활을 위한 신의 한수는 ‘혁신, 공감, 협조’ ▲그렇다면 다시 부활하는 농업이 되려면 어떤 신의 한수가 필요한가. 우선 농민들부터 변해야 한다. 농업경영의 주인은 국민이다. 농업의 본래 역할은 국민에게 안전한 식품을 안정되게 공급하는 것이며, 그런 농업이 될 때 농촌이 농업인들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삶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농업계의 뼈를 깎는 체질 개선, 혁신이 필요하고,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국민들의 공감과 협조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아무리 뭘 해도 국민들이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국민들이 진심에서 잘한다고 칭찬해주지 않으면 농업은 다시 부활할 수 없다고 본다. 농업계가 먼저 혁신을 하고, 국민들은 이에 공감하고 나아가 협조를 해줄 때 결국은 지속 가능한 농업 농촌을 만드는 길이 아닌가 싶다. ▲농정을 책임지고 있는 관료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항상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누구를 위해 내가 뭘 어떻게 하고 하는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게 없으면 단순한 월급쟁이가 되는 거다. 그게 결국은 사명감이다. 사명감에 충실할 때 신의가 생겨나는 것이다. ▲적극적인 SNS 활동 등 소통을 잘하고 있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소통을 하나.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입장 바꾸어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게 없다. '사원재' 앞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한 이동필 전 장관과 부인 이정숙여사 ⓒ 밥상머리뉴스 ▲새로 지은 공부방 이름을 사원재(思原齋)라고 했던데 어떤 의미로 붙였나. 음수사원(飮水思原)이라고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때의 ‘사원’을 인용했다. 가까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조상들부터, 이웃, 농촌, 이런 것들이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 아니겠느냐. 그런 뜻에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자,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근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 ▲좌우명이 뭔가? 신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참 어려워진다. 개인도 그렇고 정부나 국가도 그렇다. 땔감을 직접 조달하는 이동필 전 장관의 지게를 진 모습 ⓒ 이동필 전 장관 페이스북 (이동필 전 장관은 집 마당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생각하면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소나무는 날씨가 추워진 후에 더 푸르러지는 나무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추운 겨울을 지낸 뒤에 꽃이 피고, 숙성기간을 거쳐야 좋은 술이 된다는 이치를 이동필 전 장관은 다시금 깨닫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철이 드는 것 같다는 이 전 장관은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을 만나기 위해 전국에서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SNS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좀 더 낮은 자세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이 전 장관은 조만간 동네 명예이장이 될지도 모른다며 큰 벼슬을 얻은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단촌에서 계속될 ‘이동필의 일이삼사’를 기대해 본다.) <정리: 김연정 기자> <사진: 이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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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심,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 오픈

농심이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Forest Kitchen)’을 오는 27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오픈한다. Forest Kitchen은 숲(Forest)과 주방(Kitchen)을 조합한 단어로 자연의 건강함을 담은 메뉴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휴식(For Rest)의 의미도 전달할 수 있는 만큼, 비건 푸드로 고객의 힐링은 물론 지구 환경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도 함께 담았다. 농심 Forest Kitchen은 비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며, 단일 코스요리로 다양한 비건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저녁 10개, 점심 7개 요리가 제공되며, 이 중 3가지 요리에 대체육을 사용한다. 농심 관계자는 “각 메뉴마다 스토리를 입혀 기존 비건 레스토랑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맛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비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기존 대다수 비건 레스토랑이 햄버거, 파스타 등을 제공하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라는 것과 차별화된다. 비건 푸드에 대한 색다른 경험과 인식개선에 중점을 둔다는 전략이다. 특히, 농심은 그간 대체육을 개발하며 축적한 기술력에 김태형 총괄셰프가 미국 뉴욕의 미슐랭 1, 2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접목해 메뉴를 개발했다. 대표적인 메뉴는 코스의 첫 요리이자 레스토랑의 이름을 담은 ‘작은 숲’이다. 작은 숲은 숲으로 꾸민 트레이에 제철 채소를 이용한 한입거리 음식과 콩 커스터드, 콩꼬치 등을 담았다. 농심 포리스트 키친은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애플리케이션 ‘캐치테이블’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농심은 비건 문화의 확산과 대체육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트렌드에 발맞춰 새로운 비건 식문화를 열어가기 위해 레스토랑 오픈을 추진했다. 농심은 타 비건 레스토랑과 달리 대체육 핵심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향후 이를 활용한 신메뉴 개발에 유리하다는 장점을 살려 다채로운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 배스킨라빈스, 7월 이달의 맛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 출시

배스킨라빈스가 하와이 소재의 마카다미아 전문 브랜드 ‘마우나로아’와 협업해 7월 이달의 맛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을 출시한다.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은 고소한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과 달콤한 카라멜 아이스크림의 두 가지 플레이버에 견과류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토핑을 쏙쏙 넣은 후, 카라멜 리본을 둘러 바삭한 식감과 깊은 풍미를 극대화 한 제품이다. 입 안 가득 부드럽고 진한 달콤함과 특유의 이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어 마치 하와이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달의 음료로는 고소한 마카다미아 맛 블라스트에 부드럽고 풍부한 향의 카라멜 드리즐을 더한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블라스트’를 선보인다. 허니 로스티드 맛 마카다미아 한 봉을 토핑으로 통째로 올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풍미가 특징이다. 이와 함께,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코팅을 입힌 볼 형태의 디저트 ‘아이스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 볼’도 7월 중순부터 만나볼 수 있다. 이외에도, 배스킨라빈스는 포켓몬스터를 적용한 제품들의 인기에 힘입어 ‘팽도리’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한다. 시원 상큼한 밀크와 소다 맛 아이스크림에 팝핑 캔디를 올려 톡톡 튀는 식감을 더한 플레이버 ‘도리도리 팽도리’를 비롯해, ‘팽도리와 함께 퍼즐을 케이크’, ‘팽도리 미니 모찌팩’, ‘팽도리 블루레몬 블라스트’ 등 4종이다. 한편, 배스킨라빈스는 무더운 여름을 날려버릴 시원한 혜택을 담은 ‘H-DAY 이벤트’를 진행한다. 7월 2일부터 30일까지 매주 주말마다 파인트(8,900원) 사이즈 이상 구매 후 해피포인트 2천 포인트 사용 시 2,000원의 혜택을 적용해 4,900원에 판매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피앱 및 배스킨라빈스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