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알면서 새것도 안다. 구본신참(舊本新參). 옛것을 참고하여 새것을 첨가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많이 들어본 사자성어지만 정작 나이든 사람들의 생각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곤 한다. 그러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내공은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이다.

밥상머리뉴스는 창간을 맞아 【원로에게 듣는다】를 특집으로 마련했다.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사회 곳곳에 흉측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세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자 함이다. 첫 순서로 서울대 총장과 한국교원대 총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그리고 3개 부처의 장관을 역임하고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권이혁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94)으로부터 고견을 들었다.

<대담: 김병조 발행인>

 

-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1회생으로 졸업하고 위생학교실 교수 조무원을 시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중에 수의학부 전임강사로 일하다가 미국의 미네소타대학교에서 보건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서울대총장도 하고 3개 부처 장관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우연히 기회가 닿은 경우가 많았다. 그때만 해도 위에서 하라고 시켜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정치 경력은 없던데, 혹시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유혹은 없었나.

“제안을 받은 적은 있으나 하지 않았다. 윤보선 대통령 시절, 고향인 김포에서 총선에 나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다른 것은  다 괜찮지만 국회의원 아내는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포기했다. 그 이후로는 정치를 하라는 특별한 권유를 받은 적이 없다.”

 

- 최근 32명의 서울대 보건대학원 제자들이 스승의 날에 은사를 기리는 책을 발간했던데 기분이 어떤가.

“처음 기념집을 만들겠다는 얘기를 듣고 대단히 놀라고 큰 감동을 받았다. 출판된 책을 보니 제자들이 매우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보건대학원에 다닌 분들은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른 것 같다. 사실 예전과는 달리 사제지간이 별로인 경우가 많지 않나. 요즘에는 지혜와 신뢰로 인생을 이끌어주는 스승이나 지도자를 뜻하는 말로 ‘멘토’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멘토의 상대자를 ‘멘티’라고 하는데 책을 만들어준 분들이 나에게는 오히려 멘토로 느껴진다. 옛 제자들이 나를 위한 책을 펴낸 사실이 대단히 기쁘고 감사하며 자랑스럽다. 별로 신통치 못한 스승을 참스승이라고 아껴주는 제자들에게 고맙다.”

 

-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젊은 시절에는 골프를 주로 했지만 지금은 다리가 별로 좋지 않아 집안에서 자전거를 타는 정도다. 그조차도 5분 정도 타는데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음식은 특별히 가리지 않고 먹는다.”

 

- 우리나라의 노인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인생의 정점은 90세라고 생각한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처럼 90세 이전의 사람들은 삶의 오르막길을 걷는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은 90세가 넘었으니 이제 내리막길이다. 90까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고 생각해 인생 슬로건을 ‘여유작작(餘裕綽綽)’으로 했는데, 90부터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인생 슬로건을 ‘유유자적(悠悠自適)’으로 했다.”

 

- ‘여유작작’과 ‘유유자적’은 어떻게 다른가.

“둘다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다’는 의미인 면에서는 비슷하다. 여유작작은 빠듯하지 않고 아주 넉넉하다는 뜻이고, 유유자적은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자기 멋대로 마음 편하게 산다는 뜻이다. 근래에는 유유자적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됐다. 젊은 사람들이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여유작작’이 노화해서 ‘유유자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천천히 서두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서두르면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은 서둘러야 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 생각하면서 서둘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천히 서두른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정신적 여유를 잃지 말아야 몸도 여유가 생기고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다.”

 

-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굉장히 높다. 어떻게 해야 하나. 

“큰 과제다. 우선 건강수명을 전제로 해야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그런 쪽에 신경을 좀 많이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인에게도 인성교육, 자기 자신을 아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는 인성교육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다.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늙어서도 인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갈등해소의 방법”

 

- 우리나라는 세대 간, 계층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상대를 이해해줘야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알고 죽는 사람은 나은 사람이다.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게 되면 갈등도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왜 불효를 하게 되는지 알면 다행인데 그냥 넘어가게 되면 그것도 문제다. 현재 시대는 고비를 넘기는 중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뭔가 결심만 하면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다. 아직은 흔들리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화제였다.

“나는 바둑을 두지는 않지만 그 대결은 알고 있다. 그것을 보면 정말 현실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기계 아닌가. 대결 결과만 놓고 본다면 결국 기계가 사람을 정복하게 된다는 뜻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기계와 사람이 대결하지 않겠나 싶다. 물론 기계의 발전은 무섭지만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을 지켜야 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부정식품은 집단살인이다”

 

- 먹거리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먹거리 분야는 몇 년에 한 번씩 문제가 터지곤 한다. 내가 보사부 장관을 할 때도 농약 콩나물, 카놀라유 등 잊을만하면 나타났다. 장관 시절 식품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부정식품은 집단살인이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상에 부정식품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식품은 사람이 먹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해로운 식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의 아이에게 먹일 사람은 없지 않은가. 부정식품을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시운다행(時運多幸)’, ‘시운행’이라는 말을 종종 쓰는데 시대나 때의 운수가 좋아서 경사를 맞이한다는 의미다. ‘시운불행(時運不幸)’의 반대말이지만 정식으로 인정된 단어는 아니다. 예를 들어 축구를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2-3으로 지게 된다면 시운불행인 것이다. 얼마 전 서울시의사회 행사를 가서도 시운다행 얘기를 했다. 나이를 드니 운명론적인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운수가 좋길 바란다.”

 

●권이혁 이사장은

1923년 경기도 김포 출생,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네소타대 보건대학원을 거쳐 서울대에서 의학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의과대학장, 보건대학원장, 서울대병원장, 서울대 총장, 한국교원대 총장, 성균관대 이사장 이외에도 문교부·보건사회부·환경처 등 3개 부처의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대한보건협회·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를 맡고 있다.

 

정리 : 양혜인 기자

사진 : 이진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