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국수 두 그릇을 먹고 돈을 주지 않고 도망가던 노숙자에게 “뛰지마, 다쳐”라는 따뜻한 말을 해주었던 식당 주인이 1월 8일 요양병원에서 83세로 돌아가셨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위치한 국수집 ‘옛집국수’ 주인 배혜자씨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니 당시 고인의 나이 58세 때다. 추운 겨울 새벽 6시에 문을 열었는데, 남루한 옷차림의 40대 남성이 들어왔다. 일견 노숙자로 보이는 그가 2천원짜리 국수 한 그릇을 허겁지겁 먹어치우자 주인은 한 그릇을 더 주었다. 남자는 물 한 잔을 달라고 해놓고는 도망을 쳤다. 그렇게 도망가는 남자에게 주인 아주머니가 한 말이 “뒤지마, 다쳐”였다. IMF외환위기 때 사기를 당해 절망에 빠진 남자는 그 한마디로 인해 자신을 외면했던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을 버리고 파라과이로 가서 재기에 성공을 했다. 그리고 어느 방송에 그 국수집이 나오는 걸 보고 담당 PD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과 관련된 일화를 전하면서 국수집 주인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필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인간이 인간을 위해 행하는 최고의 종합예술’이라고 말한다. 만드는 사람도 인간이고, 먹는 사람도 인간이기 때문에 지극정성으로 만든 한 그릇의 음식은 예술작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음식점업을 인문과학이라고 보는 사람이다. 만약에 그 상황에서 국수집 주인이 도망가는 노숙자에게 돈을 내놔라고 고함을 쳤다면 장사치에 불과했겠지만, 돈보다 목숨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다칠까봐 걱정했으니 예술가다. 아니 천사다. 흔히 음식장사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말은 그렇게들 하지만 실상은 돈독이 들어있는 장사치도 많다. 그런 요즘 세태에 25년 전의 국수집 일화는 음식장사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아울러 당시 일화는 식품제조업과 외식업을 산업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울림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국내에도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 상황에서 하루 하루 끼니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이 먹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고인의 소천 소식은 선한 마음을 가진 나비 한 마리가 하늘나라로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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